삼국시대 부산을 포함한 영남지역의 장례문화는 ‘후장(厚葬)’의 풍습이 강했기에, 당시의 고분을 발굴 조사하게 되면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같은 고분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종다양한 유물 중에서도 형형색색의 옥을 연결해서 만든 목걸이는 우리가 박물관에서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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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금정구 두구동에서 나온 유리제 곡옥 거푸집. 부산박물관 제공 |
옥 목걸이의 재료로는 비취 수정 마노 등 천연 광물 외에도 인공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리옥을 널리 사용했다. 천연 광물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희소가치와 함께 가공에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지만, 유리옥은 만들기가 비교적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유리옥이 가진 이러한 장점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유리옥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를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유물은 이러한 유리옥 중에서도 곡옥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토제 거푸집이다. 길이 1.9㎝ 정도의 소형 곡옥 3개를 한 번에 만들 수 있게 각각의 틀을 나란히 배치해 납작한 사각형태로 만들었다. 거푸집의 전체 길이 5.4㎝, 두께 1.2㎝로 크기는 매우 작다. 곡옥틀 각각의 머리 부분에는 곡옥 머리에 구멍을 내고 유리용액이 굳은 후 분리를 쉽게 하기 위한 철심을 놓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고분과 같은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리옥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거푸집이 발굴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두구동 출토품처럼 온전한 형태로, 그것도 3개의 유리 곡옥을 동시에 만들 수 있도록 제작된 거푸집은 비슷한 유물조차 찾기 어렵다.
이 유물이 출토된 곳은 삼국시대 부산의 마을 중 한 곳이었던 두구동 마을 유적이다. 유적은 동시기 40~50가구가 거주했던 대규모 마을이자, 부산-양산-울산을 연결하는 구조곡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지로 부산과 외부지역을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했다. 거푸집이 출토된 집자리에서는 아궁이 자리와 함께 시루, 손잡이 달린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수많은 삼국시대 고분에 대한 연구에 비해서 여기에 묻힌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 많은 부장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조사 연구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 소개한 ‘곡옥 거푸집’이 삼국시대 부산 사람들의 장신구 생산 연구에 작은 단서가 되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