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학 질적 연구방법 담은 책
- 필리핀 빈민가 복싱의 의미 등
- 참여관찰 통해 들여다본 사례
- 이야기하듯 재미있게 풀어내

신기한 책이다. 이 책에서 자주 만나는 크고 작은 여러 제목은 대체로 건조하다. 예컨대 ‘사회학과 사회조사’ ‘사회학에서 데이터란 무엇인가’ ‘필드워크란’ ‘필드워크 하기’ 등이다. 그런데 제목만 그렇고, 본문은 어디를 골라 읽든 대부분 대목이 재미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타자 이해의 사회학’은 분류하자면, 교과서다. 저자 가운데 한 명인 기시 마사히코 교토대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래서 이 책은 ‘수업에서 사용하기 편한 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읽기에 재미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제2장 ‘참여관찰’ 단원을 집필한 이시오카 토모노리 교수가 필리핀에서 참여관찰 방식으로 연구할 때 찍은 동네 권투 체육관 사진이다. 호밀밭 제공

이 책은 초심자와 학생을 위해 사회학의 질적 연구 방법의 세계를 알려준다. 그 핵심 요소는 ▷필드워크 ▷참여관찰 ▷생활사이다. 그리고 질적 연구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질적 조사란 간단히 말해서,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조사’를 말합니다.”(12쪽) “타자를 가볍게 이해하려는 것은 폭력입니다.”(69쪽) “그러나 우리는 조사와 취재를 통해, 사람들의 행위나 그 사회적 존재 방식에는 거의 모든 경우에 그 나름의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69쪽)

바로 앞 문장에 나온 ‘그 나름의 어떤 이유’를 달리 표현하면 타자의 합리성이다. 남, 다른 사람의 합리성이란 뜻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일관되게 사회학의, 질적 연구의, 필드워크·참여관찰·생활사의 중요한 목표는 ‘타자의 합리성’에 대해 이해하려는 것임을 말한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사회학이 어떤 학문인지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저자들은 이런 내용을 수많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듯 풀어낸다. 생생한 사례가 풍부하고 저자들의 직관이 살아 숨쉬니, 교과서인데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타자 이해의 사회학’을 쓴 기시 마사히코, 마루야마 사토미(니혼대 교수), 이시오카 토모노리(교토대 부교수) 3인은 모두 사회학의 질적 연구 부문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깊이 정진한 학자들이다. 기시 마사히코 교수는 30년 가까이 오키나와에서 빈곤과 사회구조 등을 주제로 질적 연구를 펼쳤다. 이시오카 토모노리 교수는 필리핀 빈민가를 중심으로 복싱이 빈곤한 공동체에서 갖는 의미 연구를, 마루야마 사토미 교수는 일본의 여성 노숙자 연구를 오래 깊이 펼쳤다.

‘현장 연구의 도사’들이 함께 이런 재미있고 속이 꽉 찬 교과서를 만든 점 자체가 뜻깊다. 이런 책이 있으면 참 든든하겠다 싶다. 필드워크·참여관찰·생활사 연구와 관련해 이 책은 ‘디테일 끝판왕’이라고 해도 좋을 많큼 세심하다. 그러면서도 ‘타자를 이해하는 학문’으로서 사회학의 지향·철학을 굳게 거머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언론인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도 다가온다. 필드워크·참여관찰·생활사 연구는 어떤 식으로든 언론의 취재 활동·기법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질적 조사가 자칫 범하기 쉬운 폭력성 문제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대면하는 세계’를 아는 것이 참여관찰뿐 아니라 다른 조사 실천에도 유효한 경우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215쪽) “‘타자’가 아니라 ‘타자가 대면하는 세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218쪽) 등의 통찰도 매우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