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호는 능동태지만 詩는 수동태”
- 시인의 생각 공유한 따뜻한 시간
지난 14일 시인 30여 명이 한자리 모여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자리가 있었다. 1945년생으로 1968년 ‘사상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강은교 시인이 동료·후배 시인을 초청했다. 행사 장소인 부산 부산진구 더스타뷔페로 가니, 입구에 ‘강은교 시인 대산문학상 수상 기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많은 시인·문학인이 담소하고 있었다. 부산 시단의 원로 신진 최휘웅 시인, 행사를 주관한 배재경 계간 ‘사이펀’ 발행인을 비롯한 부산 시인, 김해·울산에서 온 시인 등 참가인은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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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강은교 시인의 대산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마련된 저녁 자리에서 참가자들이 축하 케이크를 놓고 조촐한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다. 왼쪽부터 최휘웅 강은교 신진 시인, 배재경 계간 ‘사이펀’ 발행인. |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이런 성격의 자리가 퍽 줄었기에 관심이 갔다. 사연은 이랬다. 동아대 문학 교수를 지내며 부산 시단을 줄곧 지킨 강은교 시인은 지난해 11월 제32회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시집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민음사)다. 이 시집은 올해 등단 57년째를 맞은 그가 여전히 환상·상상·신화·현실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생생하고 깊은 시를 창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대산문학상은 권위 있는 예술상이다.
강 시인은 원래 올해 1월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주위에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때 그만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행사가 미뤄져 이날 자리가 마련됐다. 강 시인은 “수상 시집 출판기념회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동료 문인들께 부담이 될까 걱정됐다. 별다른 행사 없이 다정한 자리,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자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시단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무척 큰 시인이며, ‘허무집’ ‘빈자일기’ ‘우리가 물이 되어’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초록 거미의 사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중요한 시집·산문집을 펴냈다. 강 시인은 인사말에서 말했다. “시는 쓰는 것이라기보다 ‘쓰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수동태’가 아닐까? 어떤 ‘의도’가 들어오면 문학은 성공하기 힘든 것 같다. 구호는 능동태이지만, 그것이 시가 되려면 수동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후배 시인들 표정은 진지해졌다. 수동태·수동이라는 표현은 다소 좋지 않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원로 시인은 한 번 더 기성관념을 뒤집는다. 수동이라는 표현을 끌어올 만큼, 깊은 침잠과 사유가 좋은 시를 쓰는 데 중요하다는 뜻을 슬쩍 전했다. 원로 최휘웅 시인은 “시인을 꿈꾸며 고학하던 문학청년 시절 강은교 시인의 1968년 등단 작품 ‘순례자의 잠’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강 시인과 동아대에서 함께 문학 교수로 활동한 신진 시인은 ‘강은교 시가 갖는 특징과 위상’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시인들이 모여 시와 밥을 함께 나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