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식민사학자가 조작한 사료
- 韓 역사학자들 그대로 받아 써”
- 1차 사료 근거해 조목조목 반박

사도세자 초상. 다산초당 제공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새 저서 ‘도둑맞은 한국사’를 읽으니 인상 깊은 대목이 많다. 논리 구조가 자못 탄탄하고 문제의식이 선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논리 구조는 대체로 이러하다.

먼저, 현재 상식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사의 장면을 제시한다. 이어 그 장면이 어떤 사료를 근거로 그와 같이 해석됐는지 검토한다. 바로 그와 같은 결론을 유도한 기존 사료 선택과 해석을 엄정하게 비판한다. 다른 사료나 숨겨졌던 사료, 무시됐던 사료를 바탕으로 기존 인식을 엎는 해석을 제시한다. 이렇듯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책을 전개한다. 저자 이덕일 박사의 말을 ‘들어가는 글’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역사 공부란 다른 말로 1차 사료 공부이다. 사료는 크게 1차 사료와 2차 사료로 나누는데 1차 사료는 당대에 쓰여진 사료를 뜻한다. 2차 사료는 1차 사료를 보고 쓴 논문이나 저서를 뜻한다. 앞의 논의를 예로 들면 고려나 조선의 북방 강역에 대한 1차 사료는 우리 측의 ‘고려사’ ‘태종·세종실록’ ‘세종실록지리지’와 중국의 ‘명사’(明史) 등이다. 이런 사료들은 고려·조선의 북방 강역이 지금의 요령성 심양 남쪽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 서술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이케우치 히로시, 이마니시 류, 쓰다 소키치 같은 식민 사학자들이 ‘반도 사관’으로 조작한 2차 사료를 1차 사료인 것처럼 높이면서 교과서를 서술해 왔다.” 그래서 현재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고려·조선의 강역이 실제보다 훨씬 좁게 인식해서 지도를 그렸고 그런 내용이 교과서에 다 들어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꼭지 글 가운데 ‘고려 땅 2000리를 잘라먹은 한국사 교과서’는 저자가 “고려와 조선의 북방 강역 경계선이 있었던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이라는 1차 사료를 다양하게 제시하며 기성 학설을 반박한다.

‘어떻게 사육신이 일곱 명인가’라는 단원도 흥미롭다. 이병도 신석호를 비롯한 한국 사학계의 거물들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권세에 직면해 정당한 기존 학설을 비틀어버렸다고 꼼꼼하게 제시한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자였는가’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순조 때 가서야 남긴 ‘한중록’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시 정치 상황을 종합으로 이해해야 노론의 정략과 소론의 대응, 그리고 사건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책은 ‘누가 단군을 지웠는가’ ‘동이족 역사까지 빼앗아 가려는 중국’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내려왔는가’ ‘삼한 땅 4000리는 어디로 갔는가’ 등 논의를 전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