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 다양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조성하며 그들의 삶을 기리고 애도한다. 이러한 장례 문화의 뿌리는 놀랍게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무덤이 처음 등장한 시기로도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는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된 인류사의 큰 전환점으로, 이때부터 무덤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흔적이 남겨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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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삼동패총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옹관. 복천박물관 제공 |
신석기시대의 무덤은 그 형태와 매장 방식이 다양하다. 시신이나 유골을 항아리와 같은 토기에 담아 묻는 옹관묘(독무덤),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움)에 안치하는 움무덤,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 등이 있다. 특히 옹관묘는 삼국시대까지 그 전통이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옹관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인데, 이는 시신의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을 배출하기 위한 실용적인 설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부산박물관에서는 부산 영도 동삼동패총(조개더미 유적)을 발굴조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을 발견했다. 바로 초기 신석기시대의 옹관묘로, 당시의 매장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매장 방식은 50~65㎝ 정도의 구덩이에 옹관을 가로로 눕혀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으나, 시신을 넣은 토기 항아리와 그 입구를 덮은 토기 항아리 2개를 맞대어 만든 ‘합구옹관’으로 보인다. 많이 파손된 채로 발굴되어 아가리와 몸통 일부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아가리 아래에 작은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특이한 형태로 기본 바리형 토기보다 공을 들여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옹관에는 누가 묻혔을까? 옹관의 크기로 볼 때, 성인보다는 아기나 어린아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뼈만 추려서 묻는다고 해도 어른용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이 작은 무덤은 부모가 아이를 잃고 슬픔 속에서 남긴 마지막 흔적으로 사체가 훼손되지 않기를,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기를, 영혼이 편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동삼동패총의 옹관묘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담겨 있는 중요한 유물로 단순한 매장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70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작은 무덤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그리움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