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연극제서 열린 합동공연
- 관객이 공연장 구석구석 거닐며
- 돌발상황처럼 기획된 연극 관람
- 지역 청년들이 기획·연출·연기
- 부산문화회관은 ‘청년배우 모집’
- 신예들 무대 설 기회 마련 잇따라
“그냥 연극 그만둘까 봐요. 어차피 설 수 있는 무대도 없는데….” 분장실에서 만난 청년이 한탄을 늘어놓는다. 건너편 배우 대기실에서는 욕설이 섞인 고함과 함께 의자가 날아다닌다. 앳된 얼굴을 한 막내 단원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선배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
| 지난 13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 제43회 부산연극제 청년 합동 연극 ‘Play-back, 100, Back-stage’의 공연 모습. 지역의 청년 연극인 100명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열정을 뽐냈다. 부산연극협회 제공 |
무대 뒤에서 일어난 돌발상황을 목격한 것만 같은 이 상황. 이는 ‘제43회 부산연극제’에서 펼쳐진 공연의 한 장면이다. 부산연극협회는 지난 12, 13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청년 합동 공연 ‘Play-back,100, Back-stage’를 선보였다. 공연은 청년 연극인들이 겪는 현실과 고뇌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관객이 직접 연습실 분장실 무대 객석 등을 산책하듯 누비며 관람하는 프롬나드 방식으로 진행됐다.
 |
| ‘Play-back, 100, Back-stage’의 연출을 맡은 청년 연극인들. 왼쪽부터 강인정 양재영 정유나 최유경 씨. 김태훈 기자 |
이 무대가 특별했던 이유가 또 있다. 기획 연출 연기 등 모든 과정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100명의 청년 연극인에 의해 탄생했다. 연극협회는 강인정(30) 양재영(32) 정유나(21) 최유경(27) 등 4명의 청년을 공모로 선발해 이번 무대의 기획과 연출을 일임했다. 지역 청년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다.
공동 연출을 맡게 된 네 청년은 최대한 많은 배우를 무대에 세우기로 했다. 어렵게 서게 된 무대인 만큼 지역에서 함께 고군분투 중인 다른 청년들과 기회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인정 연출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에게는 규모와 관계없이 무대 하나하나가 간절하다”며 “좋은 기회를 얻은 만큼 많은 후배에게도 이 기회를 나누고 싶어 100명의 연극인을 한 번에 무대에 세우는 시도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청년이 연극인을 꿈꾸지만 지역 연극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부분은 무대를 찾아 서울로 향하고, 지역에 남은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연극을 포기하기 일쑤다. 양재영 연출은 “지역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서울로 올라가거나 지역을 전전하다 끝내 무대를 떠나고 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연극협회가 올해 연극제 슬로건으로 ‘청년이 연극하기 좋은 도시 부산’을 내걸고 다양한 청년 프로그램을 신설한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다. 연극협회는 연극제가 막을 내린 뒤인 다음 달 15, 16일에도 또 하나의 청년 합동 공연 ‘오레스테스’를 선보인다. 이를 위해 최근 오디션을 열고 10명의 청년 배우를 선발했다. 연출은 그리스 유명 연출가인 야니스 파라스케보풀로스가 맡는다. 최용혁 부산연극제 예술감독은 “청년 연극인이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협회와 연극제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무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계의 ‘젊은 보석’ 찾기에 나선 것은 협회뿐만이 아니다. 부산문화회관은 오는 7월 17~19일 공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참여할 청년 배우를 모집 중이다. 부산문화회관은 2022년부터 ‘신진청년예술인 인큐베이팅 및 경력개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청년에게 대규모 공연에 참여할 기회와 급여 형태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앞서 무용과 국악이 어우러진 공연 ‘수퍼 타이거’(2022)와 뮤지컬 ‘야구왕, 마린스!’(2023) 등을 제작해 왔다.
올해는 부산시립극단 김지용 예술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아 새롭게 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20명의 청년 연극인이 출연한다. 지난 11일 마감한 서류 접수에는 4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안주은 부산문화회관 공연예술팀장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들의 지속적인 커리어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한다”며 “앞서 제작한 ‘야구왕, 마린스!’는 지난해 11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K뮤지컬 로드쇼’를 통해 해외 무대에 진출한 데 이어 최근 정식 라이선스 공연 계약을 맺는 성과를 거뒀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