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다.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돌 점토판 종이 위에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거나 써서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인류가 소리를 기록하고 다시 재생시킬 수 있었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채 150년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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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만들어진 유성기. 부산박물관 제공 |
전신소에서 송신기를 연구하던 에디슨은 1877년에 소리를 기계진동으로 바꾸어 저장하는 ‘원통형 저장장치(phonograph)’를 최초로 발명했다. 이후 베를린너가 1887년에 이를 발전시켜 ‘원반형 저장장치(gramophone)’를 만들었다. 작동 원리에 따라 전자를 유성기, 후자를 축음기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통상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유성기(축음기)라는 소리통과 SP음반(standard playing record)이 창출한 소리의 신문화는 1920년대에 전 세계로 확산했다.
우리나라는 1890년대에 유성기가 전래된 이후 1926년 윤심덕(尹心悳)의 ‘사(死)의 찬미(讚美)’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유성기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고, 1935년 말에는 유성기가 30만 대 이상 보급되어 이미 중상류 사회계층의 기호품이 됐다. 이후 1950년대 말부터 전자식 음향 전달 장치인 전축(전기축음기) 제조 기술이 도입되고 여러 곡을 저장할 수 있는 LP음반(long playing record)이 발매되면서 20세기 전반기를 풍미했던 유성기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 유성기는 1930년대 일본축음기상회(일축)에서 미국 콜롬비아 회사의 브랜드로 만든 휴대용 제품이다. 태엽을 감으면 수동으로 회전판이 돌고 그 위의 음반에 바늘 축을 올리면 그 진동이 상자 아래 내장된 소리통을 통해 뒷면으로 소리가 퍼져 나오는 구조다. 회전판의 왼쪽 아래에는 정지 장치가, 오른쪽 아래에는 속도(RPM) 조절기가 있다. 상자의 외부 귀퉁이에는 교체용 바늘 보관함이 있고 유성기 상자의 뚜껑 안쪽에는 SP음반을 보관하는 ‘∧자’ 모양 장치가 있다.
유물 구입 당시 유성기의 원판 위에는 평안도 기생 백운선이 1928년에 발매한 ‘관산융마(關山戎馬)’라는 희귀 음반이 올려져 있었다. 조선 영조 때의 문인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시를 서도소리 시창(詩唱) 형식으로 노래한 것이며, 그 내용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악양루에 올라 북방 오랑캐에 의한 전란이 계속되는 일을 탄식하며 읊은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신식 문물인 유성기가 외세에 의해 고통을 받는 노래 음반의 내용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화려하지만 암울했던 ‘시대의 소리’를 잘 전하고 있다. 지금은 유성기와 SP음반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소수의 음향 전문가와 복고 감성의 실내장식에 사용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