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목전시원 실장·가드너인 저자
- 정원꽃 특성과 역사적 가치 기록
- 풍성한 꽃 그림, 화원 들어선 듯

“접시꽃은 첫해에 꽃을 피우지 않고 이듬해 6월 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여름 내내 개화가 지속된다. 접시꽃은 그렇게 오랜 기다림 후 그 어떤 꽃보다 진하고 후하게 보상을 안겨 주는 꽃이다. 매년 추운 겨울을 이겨 내고 틔워 올리는 싹과 뿌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누군가의 소박한 정원에서 접시꽃은 가장 아름답게 여름을 장식해 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시골집 정원 울타리나 밭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꽃으로 인식되었던 접시꽃. 스코틀랜드 태생의 삽화가 제시 킹이 1930년에 영국 시인 존 드링크워터의 시 ‘홀리니스(Holiness)’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삽화이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초여름이면 길가나 담장, 시골 마을 어귀, 간혹 아파트 화원에서도 접시꽃을 만난다. 사람 키만 한 꽃대에 얼핏 무궁화가 연상되는 큼직한 꽃이다. 꽃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접시꽃은 알아볼 만큼 흔하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재배가 쉬워 일찍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자라고 있다.

박원순의 ‘꽃을 공부합니다’에는 꽃 그림이 풍성해, 향기로운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착각이 들 정도이다. 책에서 ‘접시꽃’ 편부터 읽게 된 까닭도 그림 때문이었다. 꽃 그림에 정신이 팔려 책장을 넘기는 중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접시꽃이 핀 시골 마을 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이다. 처음엔 그저 낯익다 싶었는데,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우리나라 배경이 아니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해 잘 자라는 접시꽃이라 추억을 가진 사람도 세계 곳곳에 있구나 싶어 반가웠다.

이 책 저자이자 가드너인 박원순은 현재 한국 수목원 정원 관리원 소속 국립 세종 수목원에서 전시원실 실장으로 재직한다. 원예학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소개해 왔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자신의 정원을 야외든 실내든 만들 때 심을 만한 꽃을 자생종이든 외래종이든 상관없이 29종 엄선해 소개한다. 수선화 붓꽃 난초 튤립 해바라기 수국 카네이션 장미….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스물아홉 가지 꽃에 대한 식물학적 정보를 중심으로, 각 꽃의 생리적 특성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 꽃들은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빛났던 꽃이기도 하다. 저자는 형태학적 생태학적 생리학적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꽃들이 인류 문화와 예술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그 문명사적 맥락도 소개한다. 이 책에 실용성과 인문학적 깊이라는 입체감을 부여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 시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바로크와 빅토리아 시대, 그리고 현대까지 각각의 꽃이 인간 문명 속에 등장한 배경과 의미, 가치와 상징성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로운 꽃이 등장하고 대륙을 넘어 확산되며 사람들의 문화와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해당하는 꽃의 초상화처럼 각각의 꽃 이야기를 장식한 그림도 아름답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꽃’ 이야기부터 찾아 보고, 이 꽃밭을 천천히 둘러보는 방식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