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세계적으로도 저명한 신석기시대 유적인 동삼동패총 발굴 조사에서 탄화된 조와 기장이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만 신석기시대 탄화 곡물이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있었을 뿐, 남한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 동삼동패총에서 실물의 탄화 조와 기장이 확인됨으로써 기원전 3500년 전에 한반도 남쪽 끝까지 초기 농경이 확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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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삼동패총 출토 압흔토기와 조의 압흔 사진.
부산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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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0여 년이 흐른 후, 한반도 남부지역으로의 신석기시대 초기 농경의 확산이 300년 정도 더 빨리 시작되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그것은 동삼동패총에서 출토된 토기 안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38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의 태토에서 조의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토기는 주변에서 채취한 흙으로 반죽해 모양을 만들고 건조시킨 후 굽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제작 과정에서 의도하거나 의도치 않게 여러 가지 물질들이 들어가게 된다. 토기 제작장 주변에 떨어져 있던 조나 기장이 들어갈 수도 있고, 잡곡에 기생하던 벌레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물질들 자체는 굽는 과정에서 타서 없어지지만, 그것들의 흔적은 흙에 그대로 남게 된다. 그 흔적들이 남아 있는 토기를 압흔토기(壓痕土器)라 부르며, 현재의 연구자들이 토기 태토를 자세히 관찰해 흔적을 찾고 그 미세한 흔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인류가 흙의 화학적 변화를 인지하고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토기는 인류 생활에 불가결한 도구가 되었으며, 자주 깨지고 새로 만들기 때문에 시기와 지역을 판정하는 연구의 기준이 되어왔다. 시기와 지역을 알 수 있는 토기에 그 당시 생활과 관련이 깊은 씨앗이나 열매 곤충 등 여러 가지 정보가 매장되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적에서 토기를 발굴하듯이 토기에서 새로운 정보를 발굴해 신석기시대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 사람들이 어떤 잡곡을 재배했고 쌀농사를 시작하기 훨씬 이전부터 쌀벌레가 서식했다는 등 당시 사회와 자연환경, 사람들의 생활을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토기 표면에서 압흔을 찾는 데서 더 나아가, X선 촬영기술을 이용하면 표면에서 보이지 않던 자료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X선 촬영을 통해 그물을 집어넣어서 튼튼하게 만든 토기를 찾은 사례가 있다. 또 X선 촬영을 하면 토기 태토의 안쪽에서 타지 않고 남아 있는 수천 년 전의 조와 기장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진 기술과 인지능력에 한계가 있을 뿐 유물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에는 한계가 없다. 8월부터 26년 만에 동삼동패총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또 어떤 새로운 정보가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되는 한편, 박물관 수장고 속에 잠자고 있는 토기도 완벽하게 발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