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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추앙한 사마천, 그 둘을 흠모한 나림

이병주 문학과 인문 클래식 <36> 이병주와 사마천 그리고 공자

  • 조광수 나림연구회 회장·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
  •  |   입력 : 2025-08-03 19:18:55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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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 ‘사기’에 통달한 나림
- 특히 주목한 대목 ‘공자세가’
- 이상을 품은 리얼리스트로서
- 공자의 면모를 잘 묘사한 저술

- 나림 작품 곳곳 논어구절 등장
- 특히 ‘관부연락선’과 ‘여사록’
- 공자 말·철학 인용한 대목 눈길

나림 이병주는 딜레당트를 자처했다. 딜레당트는 도락가(道樂家)다. 자유분방하게 즐기며 사는 사람이다. 특별히 잘하는 전문 분야 없이 대체로 불성실한 팔방미인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치열한 기록자 작가였던 나림의 딜레당트 자처는 다분히 겸손이다. 작품 속 나림의 분신인 성유정과 유태림이 대표적인 딜레당트이다. 문사철(文史哲)에 두루 통하고 고급 취미를 향유하며 탈속함과 허무함이 몸에 밴 ‘지리산’의 하영근도 딜레당트를 자처한다. ‘봉상스(bon sense·양식·센스) 있는 딜레당트’, 양식을 갖춘 도락가, 귀족적 문화인은 귀하다.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에 있는 공묘(孔廟)의 大成殿(대성전)이다. 공묘는 공자를 기리는 최대 규모 사당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르네상스맨이 자신을 낮춰 딜레당트라고 한다. 나림은 인간을 규범에 다 담을 수 없다고 했다. 넘치는 인생을 도덕이 다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림은 질서와 규범을 강조한 공자보다 자유와 해방을 중시한 장자류다. ‘바람과 구름과 비’의 최천중은 장자를 숭상했고, ‘행복어 사전’의 서재필은 ‘예외자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외류(外流)다.

나림 자신은 호탕하고 분방한 삶을 즐겼다. 하지만 나림은 인간 공자에게는 무한한 공감과 연민을 표한다. 좌절한 큰 지식인의 포부와 간절함을 긍정하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으로 애써 무리한 일을 해가는 용기와 정의로움을 경모한다. 나림의 유언이 공자가 한 말 “기서호(其恕乎)”다. 서(恕), 용서하고 품는 것이다.

■‘공자세가’가 표상하는 것

사마천의 고향인 중국 산시성 한청시에 세워진 사마천동상.
나림은 역사를 철저히 공부했다. 과거 사실을 밝히는 것에 더해 그 사실의 현대적 의미와 현재의 함의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를 읽고 이해하는 궁극의 뜻이라고 믿고 동서양 사서를 통독했다. 무의미한 것 같아도 결국은 뜻을 드러내는 게 역사다. 기록된 사실은 스스로 말한다. 역사 기록자는 그걸 믿고 목숨을 건다. 기록자가 행간에 숨긴 본의(本意)마저 언젠가는 밝혀진다. 그래서 역사가 무섭다.

나림은 사마천을 사숙한 ‘사기(史記)’ 전문가다. 본기와 열전을 분석하고(나림의 ‘본기’ 분석은 이 연재의 제2회와 3회에 상세하다) 세가도 꼼꼼히 살폈다. ‘사기’의 세가 30편 중 나림이 가장 주목한 대목은 ‘공자 세가’다. ‘공자 세가’의 의미는 지식인의 긍지와 한이다. 큰 지식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슬프고 아프고 쓸쓸하다. 인사와 세정을 문명적으로 고뇌하자니 즐거울 수가 없다. 안목도 있고 포부도 있고 방법론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길은 울퉁불퉁 굽어 있다. 자주 좌절하고 절망하며 한이 깊어진다. 사마천은 그 원과 한의 상징적인 인물로 공자를 본 것이다.

정나라 사람이 공자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상가의 개’라고 했다. 제자의 전언을 듣고 공자는 그 표현을 웃으며 인정했다. 은근한 자부심과 절대적인 자신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초상집의 개 신세를 자인한 것은 천하에 절망했다는 뜻이다. 나라 없는 인간이란 뜻이고, 의탁할 곳 없는 문화인이란 뜻이다. 공자 같은 큰 지식인의 숙명이기도 하고, 사마천 자신의 한이기도 하다. 나림이 즐겨 쓰는 표현인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을 뿐이다”란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공자 세가’는 공자가 14년 천하 주유한 끝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을 기록했다.

사마천은 외유내도(外儒內道)의 전형이다. 외유내도란 겉으로는 반듯하고 꼿꼿한 유학자 풍이지만 안으로는 유연하고 탈속한 도가 풍이란 뜻이다. 사마천은 공자의 11대손 공안국에게 ‘상서(尙書)’를 배웠고, 유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세운 동중서에게 ‘춘추(春秋)’를 배웠다. ‘공자 세가’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나는 공자 저술을 읽고 그 인품을 알았다. 공자 묘당을 찾았더니 10여 대(代)가 지났지만 학자들이 그의 예를 강습하고 있었다. 한때 성하지만 군주나 현인 모두 죽고 난 뒤에도 찾는 경우는 잘 없다. 천자 왕후를 비롯하여 육예(六藝)를 중시하는 사람은 모두 공자를 표준으로 한다. 지성(至聖)이라 일컬을 만하다.”

사마천은 공자의 인물과 사상을 아주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유교를 신봉하는 제자로서가 아니라 치우침 없는 역사가로 기록했다. 이상을 품은 리얼리스트로서 공자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출신과 사상을 소개하며, 도가와 법가의 공자 비판도 아울러 기록했다. 걸익 장저 접여 등 도가 계열 인사는 공자에게 아집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법가 안영은 “유학자는 신용할 수 없고 오만불손하다. 상례(喪禮)를 성대하게 한다”며 의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깊도다! 여사록이여

사마천 ‘사기’ 중 공자에 관해 쓴 ‘공자세가’ 대목.
나림 작품 곳곳에 공자의 언행이 등장하고 ‘논어’ 구절이 인용된다. 나림이 특히 좋아하는 대목이 세 군데다. 첫째, ‘관부연락선’에 ‘논어’의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학지(困而學之)”가 인용된다. 나림과 친구들이 도쿄에서 ‘목민심서’를 읽고 구약성경보다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독감(讀感)부터 정약용이 철저한 허무주의자냐 아니냐를 거쳐 다산은 한국의 마르크스다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열띤 토론을 하면서 나온 이야기다. 공부(工夫)를 중시하는 공자 사상에서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하다.

생이지지는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이니 천재다. 학이지지는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니 수재다. 곤이학지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우는 사람이니 대견하다. 여기까지는 공부가 통하는 영역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곤이불학(困而不學)” 어려움을 겪고서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 가장 못난 사람이다. 공자는 “살면서 ‘어찌할까, 어찌할까’하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배우려 하지 않거나 배우지 못하는 자, 최악이다. 공자는 스스로 생이지지가 아니고 학이지지라며 겸손해 했다.

둘째, ‘여사록’은 나림이 1976년 발표한 작품이다. 진주농고에 재직했던 동료 교사들이 꼬박 30년 뒤 서울 요정에 모여 회포를 푸는 내용의 다큐 같은 소설이다. ‘논어’의 “서자여사(逝者如斯)”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 대목은 공자가 강물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흐르는 시간이 마치 강물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네”라고 한 감상이다. 나림은 20대 청년이 50대 중년이 되어 만나는 장면을 ‘여사록’이라 명명했다. 세월도 무상하고, 은원(恩怨)도 무상하다는 뜻이다.

해방정국, 학교는 좌우로 갈라져 허구한 날 싸웠다. 60명 교사 중 혁명하다 죽은 사람, 전쟁 중에 죽은 사람도 여럿이고, 군문(軍門)에 들어 장군이 된 사람, 대학총장이 된 사람, 권력 실세가 된 사람도 있고, 옥고를 치른 사람, 사상운동하다 전향한 사람도 있다. 30년 만에 모인 자리, 처음엔 어색하다. 친한 사람끼리 바둑도 두고 아슬아슬한 인신공격성 농담도 오고 간다.

하지만 수작(酬酌)이 거듭되며 서운함과 미움은 옅어지고 지금 살아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긍정한다. ‘관부연락선’에서 M과 S 등 약자로 등장했던 동료의 실명도 공개된다. 회합 묘사가 어른스럽고 담담하다. “서자여사”다. 깊은 허무감은 삶의 에너지다.

■서로 흠모하다, 공자·사마천·나림

셋째, “기서호”는 나림의 여러 작품에 인용된다. 1982년에는 ‘나 모두 용서하리라’란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제자 자공이 “평생 행할 만한 한마디가 있을까요?” 하고 스승에게 묻는다. 공자의 답이 “서(恕)”다. 나림은 이 대목을 평생 외며 살았다. ‘산하’의 로푸심은 서노일체(恕怒一體)란 글을 써 놓고,실천했다. 나림의 본의다. 공자의 사상을 수긍하든 아니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의 진지하고 성실한 삶의 태도다.

공자가 일흔에 술회한 삶의 자취는 난세를 살아낸 거인의 자취 그 자체다. 곳곳에 유혹과 위험이 숨어 있는 난세를 살면서도 답답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삼가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자기를 닦는 데 꾀부리지 않았고 남을 가르치는 데 게으르지 않은 인생, 학문이 그대로 지성이 되고 그 지성이 곧 인격이 된 지혜롭고 따뜻한 인물. 포폄(褒貶)이 분명한 사마천도 공자의 그런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나림은 사마천을 흠모했고, 사마천이 쓴 ‘공자 세가’를 열독(熱讀)했다. 나림의 ‘사기론(史記論)’ 중 본기의 항우 품평과 더불어 세가의 공자 품인이 단연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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