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 중심지서 개막·폐막 공연
- 현지언론 “홍석원 절제된 명료함”
- 이일세 첼리스트 “매우 귀한 무대”
- 거장 박영희 재조명 필요성 느껴

부산시립교향악단(이하 부산시향)은 지난 19일 부산에서 출발해 독일 베를린과 뮌헨의 중요한 공연장에서 큰 공연을 잇따라 펼친 뒤 같은 달 28일 귀국했다. 아시아가 아닌 외국에서 부산시향 모든 단원이 참여해 대형 공연을 펼친 것이 28년 만이고, 초청 당사자가 세계 클래식 음악계(현대음악 포함)에서 명성이 매우 높은 무직페스트 베를린과 뮌헨 무지카 비바라는 점에서 이번 순회공연은 큰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부산시향은 이들 저명한 음악 축제에서 각각 폐막 공연(무직페스트 베를린)·개막 공연(뮌헨 무지카 비바)을 맡았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의 공연장인 헤라클레스홀에서 현대음악 축제 ‘무지카 비바’의 개막 공연을 펼친 뒤 관객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부산시향은 클래식 음악 중심지 독일에서 섬세하고 활달한 기량, 이해도 높은 연주를 선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무직페스트 베를린 초청을 받아, 유서 깊은 공연장 ‘베를린 필하모니’ 메인 오디토리움에서 공연한 오케스트라는 아시아 최초라고 부산시향 측은 밝혔다. 부산문화회관 차재근 대표이사, 부산시향 홍석원 수석객원지휘자가 단원과 스태프 등 110명에 이르는 일행을 이끌었다. 동행 취재를 통해 체감한 현장의 반응과 부산시향의 성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지 반응과 단원들 소감

헤라클레스홀이 자리한 뮌헨 레지던츠 전경. 뮌헨 레지던츠는 웅장한 옛 궁전으로, 극장·전시관 등 다양한 문화 자산을 품었다.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부산시향의 첫 공연장인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독일에서 약 50년째 살고 있으며 기고 등 교민 사회 관련 활동도 한다”는 한국계 여성을 만났다. 그는 “베를린은 마음만 먹으면 날마다 어디에서든 괜찮은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접할 수 있고, 이번 부산시향 연주 또한 교민 사회에서 관심이 높다”고 알려줬다. 이틀 뒤 찾아간 두 번째 공연장은 웅장한 옛 궁전인 뮌헨 레지던츠 안의 헤라클레스홀이었다.

무지카 비바 관계자 등 헤라클레스홀을 찾은 현지인들은 “이 도시에서는 클래식 음악 공연이 끝나자마자 여러 매체를 통해 다양한 리뷰가 즉각 올라오곤 한다”고 말했다. ‘귀명창’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열기와 자부심이 높은 유럽 한복판 공연장에서 홍석원 지휘자와 부산시향은 익숙지 않고 까다로운 현대음악을 섬세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현지언론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는 첫 공연 직후인 24일 자(온라인 기준) 마를린 호프만 필자 명의의 리뷰 성격 기사에서 이렇게 평했다.

(전체 5곡 가운데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을 지칭하며) “홍석원은 절제된 명료함, 선명한 정확성, 뛰어난 안정성 그리고 시벨리우스처럼 적절한 부분에서는 강조를 통해 지휘하면서도, 춤곡처럼 가벼웠다.” “전반적으로 무직페스트 베를린의 성공적인 마무리이자, 한국과 독일 및 유럽의 유대감을 분명히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 교류의 신호탄이었다.”

유럽에서 오래 공부하고 활동하며 가르친 이력이 있는 부산시향 이일세 첼리스트는 두 번에 걸친 공연을 끝내고 난 뒤 “매우 귀하고 중요한 무대에 선 소중한 기회였다”며 단원들에게 성장과 자극의 계기가 될 것임을 내비쳤다.

■재독 작곡가 박영희라는 거장

이번 독일 공연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박영희’(Younghi Pagh-Paan)였다. 부산시향은 올해 80세를 맞은 현대음악 작곡가 박영희의 곡 ‘소리’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를 연주했다. 독일 현지 음악계에서 ‘거장 박영희’에 대한 예우와 존중은 매우 높았다. ‘1994년 브레멘 예술대학교에서 동양인 여성 작곡가로서는 최초로 작곡과 주임교수로 임명’ ‘2020년 독일예술원이 선정하는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 등 다채롭고 화려한 수상 경력과 활동 이력 등은 그의 명성을 말해주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지난달 23일 자택이 있는 브레멘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장을 찾아온 그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1945년 충북 청주 태생으로 한민족·동양 정서를 잘 간직해, 동아시아 소리 세계와 서양 현대음악을 연결했다는 평(마를린 호프만의 리뷰 중)을 듣는 그에 대한 한국 예술계의 재조명이 크게 필요해 보였다.

■인상 깊은 독일의 ‘기획’

무직페스트 베를린과 뮌헨 무지카 비바 예술감독을 함께 맡은 빈리히 호프는 부산시향이 연주한 박영희 작품 2곡,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을 비롯해 모리스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올리비어 메시앙 ‘승천’을 모두 세상의 희생·슬픔과 애도와 위로라는 주제 아래 구성했다고 한다. 여기에 다양성의 철학이 바탕을 깔았다. 이런 기획 의도가 잘 맞아떨어져 현지에서는 ‘기획’이 중요한 주제가 되어 곧잘 이야기가 펼쳐졌다. 또 “홍석원 지휘자와 부산시향 초청 공연 기획과 준비가 2년 전부터 이뤄졌다”고 현지 예술·문화 기획사 온아티스트 이정일 기획실장은 밝혔다. 기획이 활달했고 시스템이 시간을 두고 일찌감치 작동한 셈이다.

매우 오랜만에 대규모 외국 공연에 나서면서 단원뿐 아니라, 실무를 맡은 부산시립예술단·부산문화회관 스태프 진도 긴장 상태에서 장기간 준비하는 등 헌신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번 공연의 경우 100명 넘는 총인원이 김해-인천-도하-베를린-뮌헨공항으로 이어지는 긴 동선을 거치는 등 현실적 어려움도 있었던 터라 최적의 활동 상태를 위한 보완 방향 등에 관한 고민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