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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후손들 발 아래 수천년 잠들어 있던 ‘땅속의 수도’ 멤피스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3 <상> 이집트 멤피스와 카이로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5-11-02 18:17:33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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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0년 전 건설된 도시 멤피스
- 나일강 범람 따른 퇴적토에 덮여
- 1800년대에야 연구·발굴 시작돼

- 로마 점령기 이후는 카이로 시대
- 이슬람 건축과 신학의 중심지로

- 수천년 세월 속 종교와 역사·문화
- 겹겹이 쌓여 박물관같은 두 도시

나일강은 단지 물길이 아니다. 그것은 이집트 문명의 시간 그 자체이며, 삶과 죽음, 창조와 부활을 동시에 품은 세계의 축이었다. 그리고 그 축은 수도인 카이로도, 대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도 아닌, 멤피스(Memphis)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26세기 쿠푸왕이 건설한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와 그 피라미드를 지키는 거대한 수호신 스핑크스. 사자의 몸과 인간의 얼굴로 힘과 지혜를 상징하고자 했던 파라오가 수천 년의 모래바람 속에도 영원히 살아 있는 듯하다.
■이집트 역사의 출발점 ‘멤피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한적한 미트라히나(Mit Rahina) 지역에는 수천 년 전 이집트의 중심이었던 멤피스가 잠들어 있다.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나르메르)가 세운 통일왕국의 첫 수도이자 ‘백색의 성벽’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다. 멤피스는 이집트 역사 전체의 ‘출발점’이라 할 만큼 오래된 도시로, 약 5000년 전(기원전 3100년) 세워져 2000년 이상 이집트의 수도이자 종교 중심지로 번영했다.

이후 멤피스는 테베(현재의 룩소르)와 알렉산드리아 등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점차 쇠퇴하고 잊혔으며, 수천 년간 나일강의 범람과 토사 퇴적, 그리고 왕조의 변천과 종교의 변화 속에 버려진 ‘땅속의 역사 도시’였다. 7세기 이후 이슬람 시대에는 카이로 인근의 도시 건설을 위해 이곳 고대 신전의 기둥들이 뜯겨 새로운 건축 자재로 사용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80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작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묻혀 있던 역사가 드러났고,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멤피스 지층 아래 4~8m 지점에는 각기 다른 시대의 유적지들이 층층이 남아 있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도 발굴이 이어지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가장 오래된 이집트 문명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멤피스의 프타신전 앞을 지키며 서 있던 람세스 2세의 석상.
관광객들에게 멤피스는 작은 건물 안에 누워있는 람세스 2세의 대형 석상이 있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랜 세월 나일강의 지층과 사막의 모래바람에 덮여 잠든 채 잊힌 람세스 2세의 석상은 훗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던 후손들에 의해 깨어난다. 정치적 수도를 룩소르로 옮긴 이후에도 여전히 통일수도로서의 상징성과 행정수도로서의 중요성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우주의 시작을 의미하는 창조의 신 ‘프타(Ptah)’의 도시와 그 신전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이집트의 영원성을 지키고자 했던 람세스 2세의 바람이 그의 거대한 석상 안에 담겨있는 듯하다.

‘프타’는 생각으로 구상하고 말로 세상을 만든 창조의 신이다. 그를 위해 세운 신전은 ‘후트 카 프타(Hut-ka-Ptah)’, 즉 ‘프타의 영혼(ka)이 머무는 집(hut)’이라 불렸다. 이 말이 그리스어로 옮겨지면서 ‘아이귑토스(Aigyptos)’, 오늘날의 ‘이집트(Egypt)’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이 됐다. 그러니 이집트는 ‘창조신의 집’, 즉 신전이자, 모든 것의 창조가 이뤄지는 신성한 땅인 셈이다.

이집트인들은 방향과 지형을 중시했다. 그들에게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생명의 방향이자 삶의 공간이었다. 반면 서쪽은 해가 지는 곳, 영혼이 머무는 사후의 땅이었다. 신전을 중심으로 산자의 땅이 동쪽에 있다면, 최초의 피라미드인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비롯한 여러 피라미드와 기자의 피라미드들이 서쪽의 끝없는 사막 위로 줄지어 서 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들여다보면, 룩소르와는 달리 멤피스의 구도는 단순히 나일강의 동서가 아니라, 비옥한 범람원과 사막의 경계, 즉 창조와 소멸의 경계임을 알 수 있다.

고대 멤피스 시대의 나일강은 수많은 지류가 만나는 비옥한 접경의 도시였다. 강은 매년 범람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흙을 쌓아 올렸다. 수천 년의 퇴적이 반복되며 지금의 카이로 일대는 고대보다 훨씬 높은 지형이 됐다. 도시 위에 도시가 쌓이고, 문명 위에 문명이 덮여 멤피스는 ‘땅속의 시간’, 지층 속의 수도로 변한 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고고학적 발굴과 함께 서서히 세상 밖으로 부활하고 있다.

■기독교 박해 피난처 ‘카이로’

대략 기원전 5000년부터 번영했던 이집트 문명은 ‘클레오파트라’로 상징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쇠퇴와 함께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시대로 넘어간다. 그 시절, 나일강 중류인 지금의 카이로 지역에는 로마의 군사 요새인 ‘바빌론 요새(Fortress of Babylon)’가 세워졌다. 현재 카이로의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서 올드 카이로의 ‘콥틱 카이로’로 알려진 곳이다.

‘콥트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 어울리지 않는 고대 로마의 성벽이 약 700년 동안 로마가 이집트를 지배했음을 증명하듯 웅장하게 서 있다. 기원전 프톨레마이오스 말기, 즉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요새를 기원후 100여 년에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재건하면서 군사적 요충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후 이곳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은밀히 신앙을 지키던 신자들의 피난처였으며, 훗날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심장부로 발전했다. 이들이 믿었던 종교는 로마 가톨릭 이전의 기독교인 콥트교(Coptic Christianity)로, 그 중심지가 바로 ‘콥틱 카이로’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와 요셉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3개월간 숨어 지냈다는 동굴 위에 지은 교회가 있다. ‘아부 세르기우스 교회(Abu Serga Church)’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 있었다(마태복음 2:14~15)’고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4~5세기 교회를 건축할 때는 이미 지대가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하로 이어진 교회의 바닥 이곳저곳을 유리로 만들어 아래 동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성가족이 머물렀던 시절의 원형을 목격할 수 있게 한 배려다. 카이로 구도심에 위치한 ‘성 세르기우스 교회’와 ‘행복한 성모 마리아 교회’는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초기 교회의 흔적과 로마 지배하의 중세 기독교를 간직하고 있다.
근대 이집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모하메드 알리가 아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건축한 모스크.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를 본떠 지었다.
■‘문명의 교차로’ 멤피스 카이로

역사는 강물처럼 또 흘러가고 641년, 이슬람의 장군 아므르 이븐 알아스가 이집트를 정복했다. 그는 바빌론 요새 북쪽에 ‘푸스타트(Fustat)’라는 첫 이슬람 도시를 세우며 이집트를 이슬람의 지배하에 두었다. 이때 세운 모스크가 바로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모스크인 ‘아므르 이븐 알아스 모스크’다. 하지만, 969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약 200년간 이집트는 시아파의 본거지가 되었다. 현재는 다시 수니파 중심의 이슬람 국가로 돌아갔지만, 파티마 왕조 시절 불렸던 이름인 알 카히라(Al-Qahirah, ‘승리자’)가 오늘날의 ‘카이로’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후 도시는 ‘천 개의 미나렛(첨탑)의 도시’라는 애칭이 말해주듯, 이슬람 건축과 신학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이 시대에 건립된 ‘알 아즈하르 모스크’는 10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슬람 세계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남아 있으며, 관광객들에게 카이로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살라딘의 성채(Citadel of Saladin)’와 ‘모하메드 알리 모스크’와 더불어 이슬람 예술의 정점이자 카이로의 상징이 되었다.

이처럼 멤피스와 카이로는 그 존재 자체가 문명과 역사, 그리고 종교의 교차로다. 파라오의 신전, 로마의 요새, 기독교의 제단이 한 땅 위에 겹겹이 쌓인 도시. 이곳에서는 하나의 신앙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음 신앙이 태어났고, 하나의 문명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음 문명이 새로이 자리잡았다. 마치 고대 이집트의 신앙처럼 이집트는 그렇게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이어가고 있다.

19세기 말, 나일의 도시들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영국은 1882년 이집트를 사실상 보호령으로 만들고 카이로를 식민 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다. 카이로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럽식 건축과 거리, 관청 대다수가 이때 들어선 것이다. 고대의 신전 옆에는 신고전주의 궁전과 관청이 세워졌고, 수많은 이집트의 보물들이 유럽의 강대국들로 옮겨진 것도 이때다. 그러나 이 모든 역사를 겪어냈기에, 오늘의 카이로는 수천 년 된 신전과 피라미드 스핑크스, 그리고 여전히 도심을 가로지르며 언덕 위 요새로 향하는 고대 로마의 수로와 성벽, 콥트교의 교회와 수많은 모스크, 여기에 유럽식 근대 건물들까지 한꺼번에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그 모든 세월이 겹겹이 퇴적된 땅이다.

근현대의 이집트는 식민 통치의 상징이었던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아랍어로 ‘해방’이라는 뜻)’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곳에서 이집트인들은 1952년 독립혁명을 일으켰고,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다. 그렇게 일어선 카이로는 과거의 유적 위에 세워진 인구 2000만의 거대한 도시로 팽창했다.

하지만 혼잡한 교통과 소음 속에서도 도시는 여전히 고대와 현대의 시간이 공존하며, 종교의 역사가 겹겹이 살아있는 거대한 박물관 같다. 2025년 이집트는 대피라미드를 바라보는 자리에 ‘대 이집트 박물관(GEM)’을 세웠다. 대 이집트 박물관은 현재 70%가량 개방돼 있고, 지난 1일 공식 개관했고 4일 일반 관람객에게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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