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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가깝던 파라오의 권능을 기억하는 ‘무덤 신전’들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3 <하> 룩소르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5-11-16 19:17:1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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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오들이 다스린 신왕국 수도
- 아몬신 숭배의 중심지인 룩소르
- 나일강 중심 동쪽엔 현세 신전이
- 서쪽엔 죽은 왕들의 신전이 위치

- 잘 보존된 람세스 3세의 신전서
- 점점 쇠퇴하던 왕조의 운명 감지

나일강의 물길을 따라 룩소르로 향한다. 고대에는 ‘와세트’라 불렸는데, 그 뜻은 파라오 권세의 상징인 ‘홀의 도시’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라오들이 다스린 신왕국의 수도이자 아몬 신 숭배의 중심이었다. ‘테베’라는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테베와 비슷하다고 여겨 이집트의 테베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의 이름이 된 ‘룩소르’는 이후 아랍의 세력에 들어가면서 그들의 눈에 ‘궁전의 도시’로 보였음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한 도시를 일컫는 이름의 변화가 그 도시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의 철학이 담긴 계획도시다. 동쪽에는 카르나크와 룩소르 신전이, 산악지대인 서쪽에는 왕가의 계곡과 하트셉수트 장제 신전이 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태양이 뜨는 동쪽과 지는 방향인 서쪽으로, 이집트인들은 삶과 죽음의 공간을 정확히 구분지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졌던 태양이 다음 날 다시 동쪽에서 솟아오르듯, 서안에 묻혀있는 파라오는 다시 동쪽 신전에서 신으로 부활할 것이었다.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제18 왕조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가 세운 장제 신전. 절벽을 깎아 만든 3단 테라스 구조로 이집트 건축미의 정수로 손꼽힌다.
■이집트 신앙의 심장부 ‘룩소르’

룩소르의 동쪽으로 들어서면 이집트 신앙의 심장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석주가 숲처럼 솟은 ‘카르낙 신전’은 기원전 2000년께 중왕국에서 시작돼, 신왕국의 여러 파라오들이 1500년 이상 증축한 복합 신전이다. 신왕국의 주신 아몬-라와 그의 아내인 무트, 그리고 아들 콘수로 구성된 ‘테베 삼신’을 모신 제국의 성소였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3세와 하트셉수트, 람세스 2세 등이 신전의 기둥과 문을 증축했고, 신의 영광 속에 왕권의 정당성과 위대함을 새겨 넣었다. 10m에서 21m에 이르는 거대한 석주들과 빼곡히 새겨진 부조들은 수천 년 전 인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카르낙에서 ‘스핑크스의 길’을 따라 남쪽으로 3㎞ 정도 내려가면 왕의 즉위식이 열리던 ‘룩소르 신전’에 닿는다. 유일신을 주창한 파라오 ‘아크나톤’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아멘호텝 3세가 기원전 14세기에 건설했으며, 람세스 2세가 추가로 탑문과 거대한 조각상을 세웠다. 특히, 이곳에는 관광객을 놀라게 만드는 방이 있는데, 신전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탄생실이 그곳이다. 벽에는 한 여왕이 신과의 관계를 통해 잉태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아문 신이 인간의 몸으로 현신해 왕을 잉태케 하는 장면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자극적이고 흥미거리일 수 있지만, 신성한 이곳 신전에 이러한 부조를 새긴 것은 파라오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남녀의 관계를 민망하거나 숨겨야 하는 행위로 보기보다는 위대한 생명을 잉태하는 신성한 행위로 여겼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 내부. 중앙에는 그를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와 여신들, 왼쪽 벽면에는 태양의 여정과 사후세계의 열두 시간을 상징하는 부조가 있다.
■나일강 서쪽 사후세계의 도시

나일강을 건너 서쪽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곳은 ‘사후세계의 도시’, 곧 죽은 왕들의 땅이다. 가장 먼저 이곳을 신성한 매장지로 만든 왕은 멘투호텝 2세였다. 그는 상이집트 출신으로, 오랫동안 내전으로 갈라졌던 제1중간기를 끝내고 상하이집트를 다시 통일한 인물이다. 그는 기원전 21세기 이곳을 수도로 삼고, 나일강의 서편 절벽 아래 자신의 신전과 무덤을 세웠다. 아랍어로 ‘데이르 엘 바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 바위산은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생겼다. 수천 년 후 콥트교(이집트 초기 기독교) 수도승들이 이곳 상층부에 수도원을 세우고 살면서, 외부인들이 이곳을 향해 아랍어로 부른 이름이 현재의 ‘데이르 엘 바흐리’, 즉 ‘수도원의 언덕’이라는 명칭이 되었다. 이후 파라오들은 멘투호텝 장제전이 자리한 이 산 반대편 너머를 또 다른 신성한 죽음의 땅 ‘왕가의 계곡’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피라미드에서 절벽 속 신전으로 파라오의 장례 양식을 바꾼 이가 멘투호텝 2세다. 하지만, 그의 장제전은 오랜 세월의 붕괴와 방치 등으로 상당 부분이 훼손된 상태다. 복원작업을 하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고고학적 연구를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관광객들은 이곳을 최초로 선택한 멘투호텝의 장제전 대신 바로 옆에 자리한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하트셉수트는 왜 자신의 신전을 멘투호텝 2세의 곁에 세운 것일까? 아마도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온 선조 파라오의 자취 옆에서, 그녀 또한 문화와 예술로 부흥한 또 하나의 평화의 시대를 열고자 했음이 아닐까. 대다수가 다시 원형을 살려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절벽을 깎아 만든 3단 테라스 구조와 아문 신에게 바친 섬세한 부조들은 이집트 건축미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하트셉수트는 멘투호텝의 장제전의 전통은 잇되, 자신의 무덤은 장제전 뒤쪽의 산속 깊이 숨김으로써 신전과 인간의 무덤에 거리를 두었다.

■잘 보전된 람세스 3세 장제신전

룩소르 신전을 건설한 파라오 아멘호텝 3세 역시 자신의 장제전을 이곳 인근에 세웠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들판에 서 있는 거대한 두 개의 거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모두 파괴되거나 훼손된 채 두 개의 거상만이 서있던 이곳은 오랫동안 방치되어왔다. 느닷없이 이집트에서 그리스왕 아가멤논의 이름을 따서 ‘멤논 거상’이라고 불렀던 것으로도 이곳 신전의 비애를 유추할 수 있다. 다행히 지금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유적지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이미 상당수가 파괴되고 유실된 상태다. 신왕국의 절정기이자 이집트가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웠던 시기의 파라오인 아멘호텝은 왜 선조들이 택한 바위산 기슭이 아닌, 나일강과 가깝고 범람의 위험도 있는 이곳을 선택한 것일까. 나일강 위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부활하는 신전을 꿈꾸었던 것일까. 하지만 나일강은 그의 바람을 진흙으로 덮어버렸고 그의 신전은 수천 년의 세월을 흙 아래에 잠들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신전은 이제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아멘호텝 3세의 장제전과는 달리, 바로 남쪽에 있는 ‘메디넷 하부’는 원형이 아주 잘 보존돼 있다. 신왕국의 마지막 강력한 왕 람세스 3세가 세운 장제신전이다. 하지만 다른 신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신전을 둘러싼 높고 튼튼한 성벽과 성문, 그리고 그 위의 망루가 눈에 띈다. 들어서자마자 벽에는 람세스 3세가 해양민족들을 물리치는 전쟁사가 자세하고 웅장하게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신전 안의 구조 또한 단순히 제를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서만이 아니라, 파라오와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행정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즉 유사시 요새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는 뜻이다. 쇠퇴해가는 왕국의 운명은 이곳 신전의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실제로 람세스 3세 사후에는 외세의 침략과 건축으로 인한 재력 약화에다가 사제들의 권세와 재력이 늘면서 왕권이 급속도로 약해진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파피루스의 기록에서 드러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파업 사건 ‘데이르 엘 메디나 노동자 파업’이다. 왕가의 계곡에서 일하던 장인들의 급여가 지급되지 않자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하고 시위행진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만큼 파라오의 금고가 비었음을 보여준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신의 아들로 태어나 부활을 확신하던 이집트의 파라오와 그들의 자식으로 살아온 이집트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서쪽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쪽 하늘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현재의 이집트는 아직 잠들어 있는 수많은 유적들을 깨우면서, 그리고 단일 문명만으로는 세계 최대규모의 대이집트 박물관(GEM) 개관과 함께, 선조들이 꾸었던 부활의 꿈을 후손들이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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