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의 은공 덕분인지 구헌주(@kay2kr)가 사다리 위에 위태롭게 올라서서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며 거리 담벼락에 커다란 벽화를 완성해 가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다. 익숙하던 거리에 새로운 표정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 순간을 함께 했다. 가끔 난해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현대미술작품을 보며 ‘나도 미술이나 할 걸…’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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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에 있는 구헌주의 작품.
작가 제공 |
직사광선과 더위와 추위, 미세먼지, 행인들의 시선을 버텨가며 고생스럽게 완성된 구헌주의 그래피티 작품들은 음악 장르로 따지면 힙합이나 로큰롤처럼 거칠고 힘센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렇게 거리에서 태어난 작품은 적절한 조명과 온도, 습도까지 조절해 전시관에 고이 모셔지는 작품들과는 또 다른 운명을 맞는다.
작가가 그랬듯 작품 역시 비바람과 땡볕,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대책 없이 노출된다.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흔적 없이 말끔하게 페인트로 새로 덧칠되거나 아예 건물과 함께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인생과 닮아서인지 괜히 더 애틋하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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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9일 시작하는 구헌주 작가의 전시 포스터. 작가 제공 |
그런 이유로 우연히, 또는 일부러 길을 걷다 구헌주의 작품을 목격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사진으로 남기게 된다. 구헌주의 작품들은 훌륭한 포토존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어쩌면 작품의 정체도 모른 채 많은 SNS에 기록되고 공유되고 있을 그 추억 속 풍경일지도 모른다.
‘장소 특정적 전시: 점포정리’는 15년 만에 여는 스트릿 아티스트 구헌주 aka Kay2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오는 9일부터 30일까지 부산 중구 해관로 14에 위치한 상가의 빈 점포에서 전시된다. 4점의 신작과 부산 온천천 ‘똥다리’에서 시작해 20여 년간 이어진 창작 활동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길을 걷다 이미 목격했던 바로 그 풍경이거나 예상치 못하게 마주하게 될 풍경을 미리 만날 기회다.
9일 오후 5시 전시 오프닝에는 DJ 김프로가 함께하고 20일에는 이유진 작가와 싱어송라이터 김태춘이 함께 작가와의 대화와 라이브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국가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정신없이 흘러간 격동의 2025년의 마지막 달에 그래도 구헌주의 개인전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