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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추위보다 나를 더 괴롭혔던 건 사방에 얇은 막처럼 깔린 안개였다. 그것은 묵직한 바람에 실려 내딛는 발걸음마다 내 살갗을 짓눌렀다. 밤 11시. 폐기 직전인 50펜스짜리 빵을 사 들고 가는 나를 향해 부랑자 한 명이 동전통을 흔들었다. 나는 마지막 사서마저 떠나버린 도서관 로비에 앉아 차가운 빵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다. 태어난 곳으로부터 8,871km 떨어진 섬나라. 검은 나선형 계단이 있는 책들의 무덤에서 나는 매일 타국의 언어를 읽었다. 학문. 한때 저 너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것은 표지가 바랜 고서처럼 내 안에서 천천히 빛을 잃어갔다. 글자를 읽고 있으면 시야가 자꾸 흐릿해졌다. 길을 걸을 때면 하늘에 뚜껑이 덮여 있는 것 같았다. 온몸이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이 드는 주말에는 벽돌집들이 늘어선 회색 골목을 달렸다. 이번 생에 할당된 반짝임을 모두 소진해 버린 기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책상이 절반인 방에 누워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루를 뒤로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면 가끔은 노을이 지고 있었고 가끔은 새벽이었다. 한 달에 한 번 트라팔가 광장으로 나가 죽은 사람들을 위한 침묵시위에 합류했다. 붉은 피켓을 들고 상기된 표정의 관광객들 앞에 서 있으면 몸의 일부가 바람이 되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마가 뜨겁던 어느 비 오는 날, 집에 오는 길에 피카델리역에서 한 교민으로부터 중고로 산 오리털 이불을 건네받았다. 기숙사에 들어와 바람이 숭숭 새는 창문 틈을 박스테이프로 막은 후 두꺼운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창밖에는 진전없는 공사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생일날, 슈퍼에서 산 일 파운드짜리 케이크를 책상에 올려놓고 어떤 소원을 빌지 생각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침에 눈을 뜨면 방에서 작은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져 있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다 보면 수업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대마초 냄새가 풍기는 기숙사 복도를 지나 금융가의 인파를 헤치고 리버풀가 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무수히 많은 갈래로 나눠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머리카락 뭉치들이 나뒹구는 역사를 지나 동굴처럼 입을 벌린 터널로 들어갔다. 좁은 플랫폼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한 대. 두 대. 세 대. 새빨간 튜브가 2분에 한 번씩 굉음과 함께 들이닥쳤다. 줄의 앞부분에 이르면 열차가 발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상상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내 차례가 되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 틈에서 신호가 터지지 않는 휴대전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적지는 홀본역. 오르다 도로 내려오기를 반복한 도서관의 검은 나선형 계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나는 그곳으로 갔다. 무수히 많은 글자와 허무와 안개가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