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물 거물들 선택받는 비결?
- 차별화 위해 평소 액션연기 연마
- 캐릭터로 성장해온 30년 톱스타
- 가장 크게 영향받은 역할 천송이
- 나는 누군가의 찬란한 한 시절
- 더 잘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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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체’로 11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전지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지현은 ‘군체’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을 이끄는 리더 권세정 역할을 맡았다. 쇼박스 제공 |
“전지현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성?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한다. 그걸 의식하면 독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그저 매 순간 열심히 일하고 잘 살아가는 게 유일한 목표이다.”
스타일 아이콘, CF 퀸, 원조 액션 여신, 연예인들의 연예인…. 어쩌면, 이 모든 수식어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전지현은 이름 자체로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됐으니까. 그러나 정작 전지현 본인은 이런 시선에 덤덤하려 한다. 거창한 목표보다,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 나가는 것이 더 귀하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그녀 스스로는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어떤 선입견을 통해 전지현을 바라봤던 것일 수도 있다.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군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군체’에 출연한 전지현을 만났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지현은 극중 생명공학과 박사이자 생존자들의 리더 권세정 역을 맡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건 ‘암살’(2015) 이후 11년 만이다. 스크린 복귀가 오래 걸린 건, 의도는 아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이 주춤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검토할 기회가 줄었고, 그 시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드라마와 시리즈 쪽으로 이동하면서 영화 복귀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일 뿐이다.
전지현이 스크린에 복귀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감독 연상호다. 연상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전지현과 ‘북극성’을 함께한 배우 강동원 등을 통해 전지현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감독의 오해. 전지현은 “연 감독님으로부터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는 이야길 듣자마자 읽지도 않고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며, 그 누구의 영향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연상호 감독에 대한 신뢰를 부러 드러낸 것이다.
전지현과 좀비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김은희 작가의 ‘킹덤: 아신전’을 통해 한 차례 좀비와 맞선 바 있다. 알다시피 김은희는 ‘킹덤’ 시리즈를 통해 좀비물이 척박한 한국 콘텐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바 있다.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극장에 태우며 ‘좀비 붐’을 일으킨 연상호는 말해 무엇하랴. 어떻게 보면, 전지현은 K-좀비물의 양대 산맥인 두 창작자의 선택을 받게 된 셈인데, 그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전지현은 “한 장르에 국한되는 건 좋은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을 늘 해 왔다. 배우가 연기는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플러스! 내가 다른 배우와 차별화되려면 뭐가 있어야 할지 생각하다 보니, 시장이 넓어야겠더라”며 “한국 너머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배우라면 다르겠다 싶어서 해외 작업도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액션 연기에 익숙해졌다. 대사로 전달하지 않아도 액션을 통해 관객을 공감시킬 수 있는 경험을 쌓은 셈인데, 그런 요소들이 두 창작자의 선택을 받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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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체’의 한 장면. |
전지현은 ‘군체’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배우들의 꿈의 무대라는 칸 레드카펫도 밟았다. “칸에 간 건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 작품으로 정식 초청 받아 간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전에는 레드카펫을 오롯이 즐기지 못했는데, 이번엔 우리만의 레드카펫 같은 느낌을 받아서 신났다.” 영화 상영 후 나온 기립박수도 따뜻하게 남아 있다. “단순한 영화 평가를 넘어, 전 세계 영화인이 서로 고생했다고 다독이고 응원해 주는 따뜻한 포옹처럼 느껴졌다. 촬영하면서 고생한 순간들, 특히 연상호 감독님이 고군분투하시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해 나도 모르게 울컥했었다.”
‘군체’ 팀은 칸의 열기를 국내로 이어 붙이기 위해 영화 개봉 후 무대 인사로 팬들을 만나는 중이다. 각종 소셜미디어엔 ‘군체’ 무대 인사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인데, 그중에서도 유독 이슈를 선점하는 배우가 전지현이다. 애교 섞인 포즈를 취하며 팬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전지현의 모습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 특히 크롭탑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11자 ‘복근’은 발 빠르게 영상으로 퍼져 나가며 전지현의 스타성을 새삼 증명하는 중이다.
전지현은 해당 반응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이전과는 달라진 영화 홍보 방식의 변화에 놀랐다고 말했다. “(영화 홍보) 문화가 많이 바뀌었더라. 근데 좋았다. 언제 또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겠나. 관객들의 매너와 예의에 감동받았다.” 농담도 보탰다. “관객들 얼굴이 생각보다 잘 보인다. 스케치북에 글을 적어서 보여주시는데, 사실 내 이름이 적힌 건 몇 개 없다”며 “난 몇 개에 충실할 뿐이다”고 유쾌한 모습을 보였다.
■30년간 톱스타, 캐릭터와 함께 성장
1997년 잡지 모델을 통해 데뷔한 전지현은 30년 가까이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최정상의 자리에서 전지현은 무엇을 느꼈을까.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남들보다 평범한 사회생활을 겪거나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작품과 캐릭터 속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는 전지현은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을 기념한 오찬에 초청받아 청와대를 방문한 일을 언급했다. “청와대에서 내가 떨지 않고 여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전작인 ‘북극성’에서 당당한 외교관 서문주 캐릭터 덕분이었다. 서문주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정상들을 만나 여유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연기가 곧 인생이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캐릭터를 통해 성장해 왔다는 전지현에게 그녀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캐릭터가 무엇인지 물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녀? ‘도둑들’의 예니콜? 전지현의 선택은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였다. “천송이를 만나기 전에는 나를 다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었는데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연기 뿐만 아니라 실제 내 안에 있는 매력까지 다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들의 최대치를 천송이를 통해 폭발할 수 있었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연차가 쌓이면서 전지현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된다. 외모보다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스타라고 생각했던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많은 위안을 받는다. 내 젊은 시절을 채워준 분들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만약 그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나의 찬란한 한 시절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듯한 쓸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아마 나 역시 누군가에겐 ‘한 시절’을 담은 존재일 것이다. 그분들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시절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날 전지현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녀에게 ‘잘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운동만 열심히 하면 뭐하나. 일을 잘해야지. 그런데 또 일만 하면 의미가 없지 않나. 가정도 잘 꾸려야 하는데 이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게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가장 큰 내 삶의 숙제이기도 하다.”
‘군체’ 이후 전지현의 행선지는 드라마 ‘인간X구미호’다. “여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기회가 줄어들고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진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감정과 캐릭터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또 앞서가려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지금의 내 감정을 잘 담아내며 연기하고 싶다.”
정시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