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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타올·등밀이 기계 고향 부산…韓목욕문화 발상지

냉탕과 열탕 사이 <1> 부산목욕탕 기로에 서다

  • 김태훈 기자 hiro@kookje.co.kr
  •  |   입력 : 2026-06-08 19:10:49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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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사우나 컨설팅 스타트업 ‘사사사’가 지난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소셜 사우나 모임 ‘사우나단’ 활동 모습. 이들은 대중목욕탕을 함께 방문하거나 야외에서 이동식 사우나를 즐기는 등 목욕을 매개로 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사사사 제공
- 삼국시대부터 이름난 동래온천
- 개항 이후 일본인 온천장 개발
- 1980년대까지 전성기 누리다
- 욕실 딸린 아파트 늘며 하락세

- 최근 부산서 2030 새 목욕문화
- 러닝·여행·패션·미용 등과 연계
- 로컬경험 담긴 새 콘텐츠 가능성

목욕 애호가 사이에서 부산은 ‘목욕 수도’로 통한다. 다른 지역에서 목욕탕을 찾으려면 마음먹고 몇십 분을 이동해야 하지만, 부산은 동네 곳곳에서 목욕탕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목욕탕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목욕 수도’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애호가들은 피부에 좋기로 이름난 온천수, 부산 목욕탕의 명물 ‘자동 등밀이 기계’ 등 우수한 자원과 역사적 배경, 이야깃거리 등을 부산 목욕의 매력으로 꼽는다. 몸을 한번 담그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목욕 투어’를 오는 이가 있을 정도다.

■부산의 목욕 명품 ‘이태리타올’

지난해 10월 도시 브랜딩 기업 ‘싸이트브랜딩’과 러닝 크루 ‘팀 알앤티’가 봉래탕에서 개최한 ‘스무스런’ 행사 모습. 싸이트브랜딩 제공
부산이 ‘목욕 수도’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뿌리를 찾으려면 10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래온천은 삼국시대부터 이름난 온천지였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683년 신라의 재상 충원공이 온천에서 입욕했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 삼국시대 ‘구남온천’으로 불린 해운대온천 역시 예로부터 효험을 느끼려는 이들이 모여든 장소다.

부산의 목욕 문화는 개항 이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인들이 부산의 온천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온천장 일대에는 욕탕을 갖춘 여관과 휴양 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1915년 부산진과 동래온천을 잇는 전차가 개통되고, 1934년 부산진과 해운대를 잇는 철도가 놓이면서 두 온천은 인기 관광지로 명성을 누렸다.

해방 이후에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산업화 시대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부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욕실은커녕 변변한 세면시설도 없었던 탓에 노동자들은 목욕탕에 모여 함께 땀과 먼지를 씻어내렸다. 한 달 치 목욕비를 미리 달아놓고 이용하는 부산만의 독특한 목욕 문화 ‘달 목욕’도 이 무렵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에는 한국 목욕 문화의 상징인 ‘이태리타올’이 부산에서 탄생했다. 같은 시기 동래 온천장과 금강공원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렸다.

1980년대 후반에는 부산의 또 다른 명물 ‘자동 등밀이 기계’가 등장했다. 등밀이 기계의 인기는 보따리 무역상을 통해 일본과 중국에도 전해졌다. 1993년 또 다른 히트 상품 ‘찜질방’이 등장했다. 뜨끈한 방에 널브러져 한바탕 땀을 빼고 시원한 식혜와 맥반석 달걀로 배를 채운 목욕 문화는 금세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2000년대 들어 개인 욕실이 딸린 아파트가 늘면서 목욕탕은 서서히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굳이 집 밖의 목욕탕을 찾을 이유가 줄어든 탓이다. 그마저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목욕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는 물가 상승과 난방비 부담 등 경제적인 이유로 문을 닫는 목욕탕이 잇따른다.

그럼에도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전히 목욕 문화의 기반이 많이 남아 있다. 8일 기준 부산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은 646곳이다. 가장 많았던 2004년(1380곳)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는 경남(758곳), 경기도(733곳), 서울(664곳)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부산에서 목욕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도시브랜딩 기업 싸이트브랜딩 목지수 대표는 “‘한국’ 하면 떠오르는 목욕 문화 대부분이 부산에서 출발했다”며 “목욕탕 수도 여전히 전국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목욕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반짝 전성기’

내리막길 속에서도 부산의 목욕 문화를 크게 일으킬 기회와 시도는 있었다. 기회는 2010년께 찾아왔다. 목욕 문화를 다룬 웹툰 ‘목욕의 신’(2011~2012)과 ‘여탕보고서’(2014~2015)가 연달아 인기를 끈 것이다. 특히 ‘목욕의 신’의 주요 배경인 ‘금자탕’이 동래 온천장의 ‘허심청’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2014년 ‘목욕의 신’을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구체화했을 당시 제작사와 호텔농심 사이 허심청을 촬영지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관심은 목욕탕의 실질적인 부활로 이어지지 못했다. 온천장 일대 목욕탕을 재단장하고 홍보하는 후속 콘텐츠 개발이나 브랜드화 작업이 뒤따르지 않았고, 웹툰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영화화마저 무산되며 이에 대한 관심도 식었다. 기회는 그렇게 ‘반짝’ 유행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지자체가 목욕탕을 관광자원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동래구는 2020년부터 ‘동래온천장’ 상표권 등록을 추진하고 동래온천수로 만든 화장품을 개발했다. 2024년에는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과 동래온천장 일대에 ‘동래온천 나들길’도 조성했다. 해운대구는 2019년 옛 스펀지 건물부터 해운대해수욕장 인근까지 575m 구간을 ‘해운대온천길 특화거리’로 꾸미고 온천관광 도시 조성에 나서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동래온천 나들길은 일반 보행교에 가깝고, 동래온천수 화장품도 상품화하지 못한 채 생산이 중단됐다. 해운대온천길 특화거리도 온천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해당 구간에서 영업 중인 목욕탕을 찾아보기 어렵다.

■동네 목욕탕에 부는 사우나 바람

호황기와 하락세를 모두 경험한 ‘목욕 수도’ 부산에 최근 새로운 사우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웹툰의 인기나 지자체 주도의 홍보 같은 인위적인 관심이 아니라, 부산의 목욕탕을 찾은 이들이 새로운 목욕 문화를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흐름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지난해 10월 대중목욕탕 봉래탕(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러닝과 목욕을 결합한 행사 ‘스무스런’이 열렸다. 깡깡이마을 봉래물양장 남항대교 등 6㎞ 코스를 달린 뒤 함께 목욕하며 마무리하는 행사로, 참가자는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SNS에서 이색 행사로 화제를 모았다. 금정구의 여성 전용 목욕탕 ‘금샘탕’은 ‘숲길 산책+목욕’ ‘명상+사우나’ 등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행사는 8명 안팎의 소규모로 운영했지만 매번 빠르게 마감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봉래탕 이영훈(53) 대표는 “스무스런이 열린 이후 SNS를 보고 다른 지역에서 봉래탕을 찾아오거나, 젊은 손님이 단체로 방문하는 사례도 생겼다”며 “지난해까지 월평균 방문객이 100명 정도였지만 올해는 조금 더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문객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손님층이 젊어지고 목욕탕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점을 분명히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흐름의 중심에 20, 30대 젊은 세대가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들은 단순히 목욕하는 것을 넘어 미식 운동 패션 여행 등과 연결하며 목욕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 사이 유행하는 러닝이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런트립’, 기능성 운동복을 일상복처럼 입는 ‘러닝코어 패션’으로 뻗어나갔던 것과 흐름이 비슷하다. 목욕이 휴식과 모임, 로컬 경험을 아우르는 새로운 콘텐츠로 확장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목 대표는 “서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부산 안에도 목욕 문화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며 “부산의 전통 목욕탕이 가진 역사와 자원이 MZ를 겨냥한 마케팅과 결합하면 ‘사우나 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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