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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통만 연민하는 극중 허문오…그 찌질함까지 안아주고파”

‘맨 끝줄 소년’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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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에 대한 열등감은 없지만
- 늘 한계 부딪히고 깨려고 노력

- 최현욱 깜짝 놀랄만큼 연기 잘해
- 저 나이에 난 저렇게 했나 싶어

- 평생 배우로만 산 내게 연기란
- 많이 싸워도 이혼은 않는 부부

‘여기 20년째 차기작을 쓰지 못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국문과 교수 허문오(최민식). 이 인물을 잠식하고 있는 건,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작가로 성공한 대학 동기 김수훈(허준호)에 대한 열등감, 실패한 작가라는 인식에서 오는 열패감, 첫사랑마저 김수훈에게 빼앗겼다는 현실에서 오는 패배의식…. 문학을 향한 열망이 크기에, 부정적 감정은 그를 더 옥죈다.

그런 허문오 시선에 강의실 맨 끌 줄에 앉은 소년 이강(최현욱)이 들어온다. 친구 가족을 관찰한 글을 글쓰기 수업 과제로 제출한 이강. 이강의 글은 인스타 형식 글에 길들여진 또래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문오는 그런 이강의 재능에 매료된다. 이강의 다음 글이 빨리 보고 싶어 재촉도 해본다. 급기야 작문 개인 지도를 자청한다. 그러나, 문학적 교감으로 출발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집착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허문오에게 이강은 문학적 구원자일까? 앞에 수식이 필요해 보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수식어가.

■‘올드보이’와 닮은 듯 다른 ‘입으로 지은 업’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배우 최민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민식은 이 작품에서 20년째 차기작을 쓰지 못한 작가이자 대학 교수 역할을 맡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최민식은 허문오의 비극을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 해석하지 않았다. “창작자로서 갖춰야 할 근본적인 덕목에서 벗어나 외형적인 출세에 너무 집착한 것.” 그것을 “허문오 인생 비극의 단초”로 봤다. “허문오는 과거 김수훈이 내뱉은 ‘쓰고 싶은 얘기가 없으면 아예 안 쓰는 게 낫지 않나’라는 말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다. 만약 자존감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친구의 독설도 ‘미친놈 다 보겠네’ 하고 넘겼을 거다. 그런데 허문오는 그 말에 함몰됐다.”

허문오와 달리 최민식은 외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가 진짜 검열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타인에게 열등감을 가져본 적은 없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 괴로웠던 적은 수도 없이 많다. 연극할 때부터 그랬다. 한계를 깨고 나가는 것, 소위 업데이트되는 것, 그게 죽을 때까지 배우와 창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인 것 같다. 글도, 음악도, 그림도 마찬가지다. 나가떨어질 때도 있겠지만, 그 상황에 함몰되면 그걸로 끝이다.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면 비극이 되는 것 같다. 허문오가 그렇다.”

물론, 연극은 관객이 있어야 존재한다. 글도 읽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음악 역시 듣는 이가 없으면 허망하다. 외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기란, 창작자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 최민식은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관객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평가를 새겨듣고, 점검은 해봐야겠지만 답은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최민식의 생각이다.

‘맨 끝줄 소년’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쓴 2006년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2012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로 만들어져 평단의 호평도 받았다.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맨 끝줄 소년’은 문학성을 덜고, 서스펜스를 강화했다. 최민식은 “원작이 관음에 주안점을 뒀다면, 우리는 한국적인 정서와 서스펜스를 입혔다”며 “입으로 지은 업, 결국 말 한마디 때문에 무너지는 인간을 보여주는 각색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입으로 지은 업. 그래서일까. ‘맨 끝줄 소년’을 두고 최민식이 오대수로 분했던 ‘올드보이’가 연상된다는 관객 반응도 꽤 있다. 최민식도 이러한 반응을 모르지 않는 듯했다. 최민식은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에게 혀를 잘렸는데, 또 정신 못 차리고 세 치 혀 잘못 놀려서 이번에는 인수분해 되는구나”라는 평을 소개하며 “촬영하면서 ‘올드보이’를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만들고 나니 공통분모가 있었다”고 수긍했다.

다만, ‘올드보이’의 이우진과 달리, 이강의 허문오를 향한 복수심엔 개연성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가 허문오에게 접근한 이강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것. 그러나 최민식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앓았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내 앞에서 ‘가망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아이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며 화를 냈는데, 의사의 그 말이 지금도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민식은 “허구의 세계를 맞닥뜨렸을 때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촘촘하게 따져 보는 건 필요하지만,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같은 인물도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최민식은 허문오의 찌질함도 이해한다고 했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남 대가리 깨진 것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 그 인물이 가진 고통의 무게를 남들이 어떻게 재단해서 함부로 말하겠나. 그러니까 허문오의 고통은 허문오밖에 모른다. 우리야 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니까 ‘저놈이 미쳤네’ 하는 거지, 정작 그 안에 있으면 자기가 미친 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끝날 때쯤엔 허문오 이놈이 안쓰럽더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최민식은 호흡을 맞춘 후배 최현욱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셨듯이, 잘했잖나. 깜짝 놀랐다.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했나 싶을 정도였다.” 최민식이 최현욱에게서 특히나 높이 산 것은 감정 이해력이었다. “배우가 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모르고 대사를 하는 친구도 많다. 그런데 최현욱은 정확히 알더라.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의미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왔다는 얘기다. 얼마나 든든하고 예쁘냐. 이 친구가 다른 작품에서도 지금처럼 성실하게 해서 배우로서 계속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했다고 정신 나가서 칠렐레팔렐레하지 말고.(웃음)”

■“현장에서 살아 있음 느껴”

‘맨 끝줄 소년’에 출연한 최현욱(왼쪽)과 최민식. 넷플릭스 제공
‘맨 끝줄 소년’에서 최민식은 재능이 미약한 작가를 연기했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영화계에서 최민식은 김수훈에 가깝다. 많은 배우에게 최민식의 재능은 오랜 시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한 최민식의 대답은 최민식다웠다. “내가 좀 과대평가 됐다”나. “나는 늘 나에게 냉정 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 기준에 나를 맞추면 허문오처럼 된다. 인정받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허세’를 덜어내려고 한다.”

추앙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에도 거리를 뒀다. “이 일이 과연 대중을 위한 일인가 생각해 보면, 그건 결과론적인 것 같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많은 분이 보고 행복을 느끼는 건 함께 작업한 모든 사람의 결정체다. 그런데 연기라는 것만 뚝 떼어놓고 보면 이건 나를 위한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연기는 내 인생의 ‘의미’를 위해 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하는 거다.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기에 열심히 할 뿐”이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나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최민식은 사람들과 ‘협업’ 할 수 있기에 이 일을 좋아한다. “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나 제작진을 보면 되게 감동적이다. 누가 등 떠밀어서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거든. 자기가 좋아서 생고생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즐겁다. ‘이 친구들과 한 작품을 위해 움직이고 있구나’.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최민식은 연기와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를 한 것 말고는 사업도, 직장 생활도 해본 적이 없다. 오직 이 일만 하며 살아온 셈이다. 이제는 좋고 싫고를 떠난 문제다. 부부 관계에 비유하면 부부싸움은 많이 했지만, 이혼은 안 한 것 같다.”

정시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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