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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학관에 메밀꽃이 진짜로 필 때 찍은 사진이다. 올해 평창효석문학제는 9월 4~13일 문학관 일원에서 열린다. 필자 제공 |
- 유년기 가족 기억·고향 정취
- 마음 속에서 문학으로 숙성
- 문학관 풍경·소설 세계 겹쳐
- 재현된 창작실서 작가 떠올려
- 시·수필·희곡·평론 등도 남겨
■소금 뿌린 듯 흐붓한 달빛의 길 |
| 가산 이효석 |
봉평으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운전을 서두를 수가 없다. 차창 밖으로 강원도의 산과 들이 이어지고,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효석의 고향 봉평에 가까워진다. 평창의 산하를 바라보며 나는 한 작가가 아니라 한 시대의 청춘이 이 길 어딘가를 지나갔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이름은 이효석이다.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교사와 교수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문학 깊숙한 곳에는 늘 봉평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봉평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다. 한 작가가 평생 마음속에 품었던 고향의 풍경을 찾아가는 길이다.
문학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은 ‘메밀꽃 필 무렵’의 세계와 겹쳐진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과 들판,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가 걸었던 길이 떠오른다. 어린 이효석이 학교를 오가던 옛길과 소설 속 인물들이 대화장으로 향하던 길이 겹쳐지는 듯하다.
이효석문학관에 도착하면 건물보다 먼저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문학 정원과 메밀꽃 길, 오솔길이 이어지고 자연학습장과 여러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문학과 자연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공간이다.
문학관 안에서는 육필 원고와 초간본, 작품이 실린 잡지와 신문, 사진 자료와 창작실 재현 공간 등을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전시실에서 한구석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은 책장 속의 책에 인쇄된 문장이 한때 한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한 자 한 자 눌러썼을 문장 뒤에는 작가의 숨결과 창밖의 풍경, 밤늦도록 이어졌을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재현된 창작실에서는 커피와 음악, 영화와 피아노를 사랑했던 작가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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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내려다 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학관. 한여름 정경이다 . 필자 제공 |
■이효석의 고향과 풍광과 작품새로운 문화에 마음을 열었던 그의 감각은 작품 속에서도 세련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이효석은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초기에는 동반자 작가로 활동했다. 이후 자연과 인간의 삶으로 시선을 돌렸고,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순수문학과 심미주의의 세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1936년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했다.
한 편의 소설이 한 지역의 풍경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봉평에 와서야 실감했다. 소설 속 한밤중의 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문학의 길이 되었다. 메밀꽃은 이효석 문학의 상징이 되었고 봉평은 한국문학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봉평의 들판은 문학 속 풍경으로 바뀐다.
이효석에게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사랑과 욕망, 외로움과 그리움이 피어나는 무대였다. ‘메밀꽃 필 무렵’의 세계 또한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허생원과 동이의 만남에는 떠돌이 장돌뱅이의 쓸쓸한 삶과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에 대한 암시가 잠복해 있다. 달빛과 메밀꽃 아래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는 과정은 작품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든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길’은 중요하다. 허생원은 장터와 장터 사이를 떠돌며 지나간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동이 역시 길 위에서 만난 젊은 장돌뱅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길을 따라 조금씩 드러난다. 길은 장소를 연결하는 공간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시간의 통로이기도 하다.
봉평에서 실제 길을 걸어보니 소설 속 장면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길 어딘가에서 허생원이 당나귀를 끌고 갔을 것 같고, 저 언덕 너머에서 조선달이 말을 걸었을 것 같다. 문학은 사라진 사람을 다시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살았던 세계를 기억하게 한다. 소설 속 인물은 사라져도 길과 들꽃과 달빛은 남는다.
■그의 생애와 문학세계의 명암이효석의 문학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도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계급주의 문학과 동반자 작가의 세계를 지나 순수문학과 심미주의로 나아간 그의 궤적은 당시 한국문학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는 자연과 인간, 사랑과 욕망, 육체와 감각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문학의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이효석을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쓴 작가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문학을 너무 작게 만드는 일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떠돌이 삶의 애환으로도, 고향 의식의 문학으로도,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한 작품이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것이 그 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이효석의 삶은 길지 않았다. 1940년 가족을 잃은 뒤 큰 슬픔을 겪었고, 자신도 병을 얻어 1942년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짧은 생애 동안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수필, 희곡, 시나리오, 평론과 번역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다. 서른다섯! 그 숫자 앞에서 잠시 말을 잃는다.
한 사람에게는 너무 짧은 생이었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문장을 남겼을까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효석이 주는 교훈도 있다. 시대가 거칠어도 자기만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세상이 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다.
문학관을 나와 생가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사람이 태어난 작은 고향에서 시작된 삶이 수많은 작품을 거쳐 한국문학의 한 자리를 이루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의 산과 들, 가족에 대한 기억과 고향의 풍경이 그의 마음속에서 오래 숙성되어 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서른다섯 청년의 삶이 남긴 것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가 길어진다. 나는 메밀꽃이 피는 계절의 봉평을 상상한다. 밤이 내려앉고 달빛이 들판에 번지면 하얀 메밀꽃들이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피어날 것이다. 그 꽃밭 사이로 길 하나가 이어지고 그 길 위로 사람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일 것이다. 사람이 자연 속에서 가장 작아지는 순간, 그러나 동시에 자연과 가장 깊이 하나가 되는 순간, 외로운 인간의 마음이 달빛과 꽃과 바람 속에서 잠시 위로받는 순간.
‘메밀꽃 필 무렵’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작품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그 안의 외로움과 사랑, 그리움과 기다림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과 닿아 있다. 돌아오는 길, 봉평의 산과 들이 차창 밖으로 서서히 멀어진다. 문학관의 지붕과 길가의 나무도 조금씩 작아진다. 그러나 마음속 풍경은 오히려 커진다.
이효석을 만나러 왔는데 결국 만난 것은 한 사람의 작가만이 아니었다. 그가 사랑했던 자연을 만났고,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만났으며, 평범한 풍경이 어떻게 문학이 될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이효석은 고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풍경을 문학으로 바꾸었다.
나는 다시 봉평을 바라본다. 아직 메밀꽃은 피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벌써 하얀 꽃밭이 펼쳐진다. 달빛이 그 위로 흐르고 길은 계속 이어진다. 사람은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며 다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삶은 지나가지만 풍경은 기억되고, 기억은 문학이 된다. 그리고 문학은 다시 우리를 그 풍경으로 데려간다.
봉평을 떠나는 저녁, 나는 다시 뒤돌아보았다.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 메밀꽃이 피는 밤에, 하얀 꽃들이 달빛 아래 물결치는 밤에. 허생원과 동이의 발자국을 상상하며 천천히 그 길을 걷고 싶다. 짧았지만 아름다웠던 한 생애를 생각하며, 끝내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의 문장을 생각하며.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이 문학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그 오래고 아름다운 시간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