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실크로드의 교역으로 번성했던 고대 판자켄트 유적. 5~8세기 소그드인들이 살았던 도시의 고고학적 발굴이 한창이다. |
- 파미르 지역 중심도시 호루그
- 거친 여정 속 나그네의 안식처
- 잠깐의 문명을 떠나 다시 길로
-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거쳐
-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며
- 고대 유적지 사라즘서 대단원
이쉬카심을 나오면 길은 판지강을 따라 서북쪽으로 이어진다. 이전과는 달리 점점 집들이 촘촘해지고 길 위로 보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습관처럼 고도를 살핀다. 2000m 남짓이다. 4000m가 넘는 고원에 비하면 제법 낮은 땅으로 내려왔다. 사람이 깃들어 살 만한 땅이 넓어진 만큼 마을도 함께 커진 것이다. 강 건너에는 이전까지 좀처럼 보이지 않던 모스크도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정성껏 경작해 놓은 초록 밭도 보인다. 그때쯤 강 이쪽에는 지금까지 지나온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의 도시가 나타난다. 호루그(Khorog)다.
 |
| 발굴 작업 중인 모습. |
인근 템(Tem)에 판지강을 가로질러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다. 2002년에 개통된 이 다리를 시작으로 판지강을 따라 여러 곳에 다리가 놓이고 국경시장도 만들어졌다. 이곳에도 주말이면 바자르가 열린다. 이쉬카심에서 바자르를 보았을 때 그것이 그곳만의 특별한 풍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판지강을 따라 내려오면 비슷한 시장과 교역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난다. 국경이 된 강이 두 나라를 갈라놓았지만 사람들 사이 오래된 관계까지 끊어놓지는 못한 듯하다. 주말이면 지금도 강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만나 안부를 묻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판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호루그는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의 주도이자 파미르 지역의 중심 도시다. 상점과 카페, 학교와 관공서가 들어서 있고, 파미르의 여러 계곡과 마을이 이곳으로 연결된다. 며칠 동안 작은 마을을 지나온 여행자에게는 비로소 ‘도시’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준다. 도시 한가운데로 산에서 내려온 군트강(Gunt River)이 흐른다. 강은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다가 판지강으로 합류한다. 도심의 강을 따라 집과 상점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다. 일부는 강변의 비탈에서 물 위로 돌출되듯 자리해 멀리서 보면 수상가옥처럼 보인다. 물 가까이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집들을 보면 강은 이곳 사람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축복인 동시에 언제든 두려움이 될 수 있는 운명적 존재처럼 느껴진다.
호루그에서 하룻밤은 거친 파미르 여정을 넘어온 나그네에게 도시가 건네는 안락이었다. 무엇보다 끊어지지 않는 와이파이는 문명의 달콤함 그 자체였다. 통신이 되지 않는 것에도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바깥세상과 연결해주는 휴대전화 화면 속에 밤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걸 보니 문명이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는지 새삼 실감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문명의 맛을 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본래 길은 세상을 이어주지만, 타지키스탄에서 길은 종종 세상과 단절이기도 하다. 도시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는 다시 침묵했다. 호루그를 떠나 두샨베로 향하는 길은 길다.
서쪽으로 갈수록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가옥 형태다. 여행을 시작한 동부 파미르의 무르갑에서는 흙으로 지은 낮은 집이 많았다. 이쉬카심과 와한 계곡으로 내려오자 돌로 쌓은 집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파미르의 전통가옥 ‘치드(chid)’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고산의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두꺼운 돌과 흙으로 벽을 만들고 외벽의 창을 최소화하는 대신 지붕 중앙에 ‘초르호나(chorkhona)’라는 천창을 둔다. 빛과 공기가 드나들고 연기가 빠져나간다. 날씨 변화도 낮에 햇빛이 스며들고 밤이면 별빛과 달빛이 천창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또 다른 특징은 평평한 지붕이다. 건조한 기후와 이곳의 생활방식이 만들어낸 구조다. 평평한 지붕은 건초와 과일을 말리고 건초를 쌓아두는 공간으로도 쓰였다.
하지만 서쪽으로 갈수록 자연 풍경이 달라지듯 집 외형도 달라진다. 돌로 쌓은 집들이 줄어들고 다시 흙빛의 집과 담장이 많아진다. 흙으로 빚어 올린 벽과 담장은 주변의 땅과 비슷한 색이다. 길 색도 달라진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짓고 그 지역의 기후에 맞게 살아왔다. 집 모습에도 인간이 자연과 공존해온 방식이 고스란히 남은 셈이다.
이제 돌과 바위 대신 흙길이 이어진다. 차 한 대가 지나가면 황갈색 먼지가 뒤를 따라 모래 태풍처럼 솟아오른다. 흙먼지 속 비포장 길 끝에 어느 순간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차량이 많아지고 도로가 넓어진다. 높은 건물과 정돈된 공원이 나타나고, 심지어 신호등과 가로등도 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Dushanbe)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곳 이름에 뜻밖에도 소박한 과거가 있다. ‘두샨베’는 타지크어로 ‘월요일’이라는 뜻이다. 오래전 월요일마다 시장이 열리던 마을이 두샨베였다. 그렇게 작은 장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는 20세기를 거치며 성장하여 오늘날 한 나라 수도가 되었다.
다시 서쪽으로 간다. 지도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공간 여행은 어느새 인간이 이 땅에 남긴 흔적을 따라 과거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으로 바뀐다. 그 길의 중요한 지점이 판자켄트(Panjikent)다.
이곳에는 5~8세기에 번성했던 소그드인의 고대 도시가 남아 있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누비던 대표적인 상인들이었다.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아시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교역망을 오가며 물건뿐만 아니라 언어와 종교, 이야기와 문화도 함께 실어 날랐다. 고대 판자켄트에는 성채와 신전, 시장과 주택이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주택과 신전에서 발견된 벽화들이다. 판자켄트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벽화는 ‘루스탐 연작’으로, 평범한 규모의 주택 응접실에서 발견됐다. 740년경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에는 말을 탄 영웅 루스탐이 악마와 싸우고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가 묘사돼 있다.
루스탐은 11세기 초 피르다우시가 완성한 페르시아 대서사시 ‘샤나메’의 대표적인 영웅이다. 페르시아 문화에서 샤나메가 차지하는 위상은 고대 그리스의 ‘일리아스’에 비견할 만하다. 그런데 판자켄트의 벽화는 샤나메보다 수백 년이나 앞선 8세기 것이다. 루스탐의 이야기가 샤나메로 기록되기 훨씬 전부터 이곳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었던 셈이다.
루스탐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때문이다. 오래전 그 소설을 읽으며 페르시아와 오스만,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필자에게 이 오래된 도시에서 루스탐의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뜻밖의 반가움이었다. 한 권의 소설에서 알게 된 고대 페르시아의 서사가 이곳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비록 지금은 무너진 흙벽만 남았지만, 한때 동쪽과 서쪽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물건을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판자켄트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그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사라즘(Sarazm)이다. 사라즘의 역사는 약 5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 가운데 하나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라즘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곳 사람들이 고립된 세계에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발굴된 유물과 기술의 흔적을 따라가면 이 작은 정착지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은 재료와 물건들도 출토되었다. 먼 지역과 교류했다는 흔적이다. 이 시대에 이미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고원, 메소포타미아, 멀리 인더스 계곡에 이르는 광범위한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물건만이 아니라 기술과 지식, 문화도 함께 이동했다. 우리가 실크로드라 부르는 시대보다 수천 년 앞선 이야기다. 높은 산들이 겹겹이 가로막은 중앙아시아의 이 땅에서 이미 그토록 먼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이번 타지키스탄 여행은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국경을 넘어 파미르의 황량한 고원을 지나고, 판지강을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내려왔다. 강은 국경이 되어 사람을 갈라놓았지만 사람들은 그 위에 다시 다리를 놓았고, 길이 만나는 곳에는 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더 오래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끝에서 사라즘을 만났다.
수천 년 전에도 사람들는 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무엇이 그들을 길 위로 불러냈는지는 알 수 없다. 먹을 것을 찾아서였을 수 있고, 물건을 바꾸기 위해서였을 수 있고, 단지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였을 수도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국경과 국가는 길 위에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경계를 넘어 서로를 찾아가고 만난다. 인간은 경계를 만들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 서로를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그곳에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