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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부산 영광도서 9층 문화홀에서 부산 문학인들이 고 서규정 시인 추모 행사를 연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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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30여 명 황망히 모여 추모
- 낭만파 서정시인 계보 끊길 우려
지난 4일 오후 6시 부산 서면 영광도서 9층 문화홀에 시인 30여 명이 황망히 모였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부고가 전해져 온 한 시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서규정 시인 추모 시 낭독회 - 만경강에 띄우는 시 낭독의 밤’이었다. 주최 측이 매우 촉박하게 잡은 일정이었음에도 많은 이가 참석해, 고인의 생애와 문학이 남긴 온기와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날 모인 문인들 모두는 최근 77세로 타계한 서규정 시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홀로 살던 고인은 숙환으로 요양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었다. 최근 호남에 사는 혈육에게 의탁해 살다가 지난달 16일 별세했다. 서 시인을 보호하던 혈육은 외부에 일체 알리지 않고 장례를 모두 치른 뒤 “고인을 만경강에 떠나 보냈다”고 알려왔다.
타계한 줄 몰랐으므로 장례식에 갈 수 없었던 시인들은 고인의 문학 비중과 영향을 고려해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결론 내리고 이날 시 낭독회를 마련했다. 원무현 이현주 신정민 이두예 시인 등이 실무를 맡았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김형로 시인은 추모사에서 “내년 추모 행사를 우리 단체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부산 시단에서 비중이 컸다. “1949년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태어나 젊은 날 유도대학을 다닌 적이 있고, 군에서는 어쩌다가 특등사수가 된 일이 있으며, 1974년 장터에서 소 장수들과 패싸움을 벌인 뒤 부산에 왔다가, 중동 건설 현장에서도 1년 일하고 온”(고인이 서술한 ‘나의이력서’ 내용) 그는 공모전에 16번 도전한 끝에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황야의 정거장’이 당선돼 등단했다. ‘참 잘 익은 무릎’ 등 시집 7권을 냈고 한국해양문학상·부산작가상·최계락문학상을 받았다.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시에 몰두하며 동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그가 가면서 부산 시단 낭만파 서정시인 계보가 끊길 지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