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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 작가의 작품 ‘주름진 밤’이 설치된 전시장 전경. 식민과 냉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땅을 흑백의 회화로 옮겼다. 갤러리 궁 제공 |
- 부산 풍경을 흑백 회화·영상으로
- 내달 25일까지…3, 4일 야간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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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경 작가의 '오래된 진지'. 궁 갤러리 제공 |
거뭇한 화면에 나무와 풀이 겹치고 쌓이고 엉켜있다. 수십 년간 방치된 채 버려진 땅. 그러나 또 다른 긴 시간을 견디며 새롭게 그곳을 메우고 채운 존재들로 버려졌던 장소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버려졌지만 소멸하지 않는 풍경이다.
좀 더 검고 어두운 풍경으로 시선을 옮기자 태초의 시간을 품은 듯한 땅이 펼쳐졌다. 얼마의 세월을 품었을지 모를 나이테가 겹쳐진 나무의 기둥과 뿌리, 풀, 바위, 그리고 땅. 긴 세월을 버틴 땅의 시간이 검은 선과 여백의 화면으로 되살아나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전해준다.
김유경(42) 작가의 ‘흑백 회화’는 원초적이다. 흔히 지나칠 법한 땅과 나무, 풀, 바위 등의 자연 풍경을 검은 선과 여백의 모노톤으로 구현한 화면은 마치 아득한 처음 그곳의 모습을 되살린 듯하다. 늘 그곳에 존재하며 역동적인 변화의 시간을 품은 땅. 그렇기에 그의 조용한 화면은 들여다볼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갤러리 궁(부산 해운대구 중동)에서 김유경 작가의 개인전 ‘가물 玄(현)(Unseen)’을 마련했다. 장소에 대한 기억을 통해 시간과 소멸 등을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회화 설치 드로잉 영상 작품을 펼쳐 놓은 전시다.
김유경은 서울과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돌아온 젊은 작가다. 부산 출신으로 홍익대 동양화과 학부와 석·박사를 졸업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울산에서 레지던시 공간을 토대로 작업을 펼쳤다. 그리고 부산으로 돌아와 2024년부터 부산문화재단의 창작공간 감만창의문화촌에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의 주목을 받는 젊은 작가이자, 토탈미술관 민주항쟁기념관 부산금고미술관 등 부산과 서울의 다양한 공간의 전시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가 이번에 연 개인전은 오랜만에 돌아온 부산의 풍경에서 영감받은 작업으로 채워졌다. 20여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달랐다. 해안은 매립돼 바다가 아닌 땅으로 변했고, 익숙했던 풍경 역시 개발과 방치로 거칠게 변해있었다. 낯설게 바뀐 숲과 땅, 매립지에서 발견한 바다의 흔적에서 작가는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검은 선으로 잇고 쌓으며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려 ‘Part 1 곶 The Woods’를 채웠다.
‘Part 2 주름진 밤 The Folded Night’는 좀 더 깊은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식민과 냉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땅을 답사하며 검은 땅과 바위, 나무 등에서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이 겹쳐지는 찰나를 포착해 흑백의 회화로 옮겼다. 그리고 아픔을 간직한 땅을 어루만지며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의미를 담은 영상 작업을 함께 배치해 이미지의 확장을 시도했다.
지난 21일 갤러리 궁에서 만난 작가는 “오랜만에 돌아온 부산을 바라보며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낯선 풍경, 소멸되고 경계에 선 장소, 그리고 오랜 시간을 품은 땅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가물가물하다’와 ‘검을 현(玄)’을 결합한 ‘가물 현’은 단순한 검은색이라기보다 깊고 멀어 검게 보이는 상태, 안과 밖,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맞닿은 경계를 뜻한다”고 덧붙였다.
시간과 장소를 오래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풍경과 축적된 시간을 꾸준히 탐구한 그는 “개발로 변한 장소와 풍경에 아쉬움을 가졌기에 장소에 남은 시간의 중첩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고자 한다”며 “그런 의미로 이번 전시에서 한지와 먹 외에 펠트천 콩테 등 새로운 재료를 시도하고, 회화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매체를 확장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25일까지 열리며, 낮과 달리 밤에 또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내달 3, 4일에는 밤 11시까지 전시를 여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