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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들어 원도심이 침체일로를 거듭하면서 산동네 학교들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학교와 동문을 중심으로 옛 명성 찾기에 나선 부산고(사진 맨 왼쪽)와 올해 1학년 입학생이 24명에 그친 사하구 감정초등학교(가운데), 대규모 교사 개축공사 중인 서구 아미초등학교(맨 오른쪽). 박수현 김동하 기자 |
- 역사·전통 자랑하던 학교들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
- 아미초등 100억 들여 개축공사…부산고·경남여고 이전 논의도
-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국적인 명문학교로 거듭난 경남 거창고·김해 용산초등
-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을 만
1990년대 들어 부산의 각종 개발정책이 강서지역과 해운대·기장 등 동·서부산권으로 집중됐다. 부산시청과 법원, 검찰청사가 중구와 서구 등에서 199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원도심은 급격한 침체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원도심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바로 산동네 학교들이다. 신시가지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 산동네 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산동네 학교는 공동화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초등학교, 수천 명의 학생들이 뛰놀던 교정은 학생수가 급감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부산·경남을 뛰어넘어 한국을 대표하던 명문고였던 몇몇 학교들은 학교 이전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지금 산동네 학교들은 '추락이냐 부활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추락하는 산동네 학교
1895년 개교한 부산 중구 영주동 봉래초등학교. 부산 최초의 초등학교로 1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다. 이 학교는 넘쳐나는 학생을 감당할 길이 없어 중앙초등학교와 동일초등학교를 차례로 설립해 분리했다. 그러나 중앙초등학교는 입학생이 줄어 2008년 2월 63회 졸업생을 끝으로 인근 동일초등학교에 통폐합돼 동일중앙초등학교가 됐다. 봉래초등학교를 원조로 본다면 첫 분리돼 '아들'격인 중앙초등학교가 없어진 것이다. 원조인 봉래초등은 한 때 한 학년이 1000명에 육박했지만 올해 3월 입학생은 80명에 불과하다.
부산 감정초등학교는 천마산 중턱 감천고개에 자리잡은 학교로 1980년 5월 개교했다. 인근 감천초등학교가 늘어나는 학생으로 수용한계를 넘어서자 이 학교의 학생을 일부 넘겨받아 개교했다. 개교한 지 불과 30년밖에 안 된 이 학교의 올해 신입생은 단 24명. 현재 학년당 2학급씩 운영하고 있지만 오는 3월 입학하는 1학년은 1학급으로 줄게 된다. 도심 속에서 천마산과 부산항, 감천항의 풍광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학교인 감정초등학교. 이 같은 추세라면 불과 수년 내에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 감천초등학교에 통폐합될 운명을 맞을 가능성도 높다.
감정초등학교와 인접한 서구 아미동 아미초등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59년 문을 열어 6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지만 현재 1학년 30명 등 전교생이 300명을 겨우 넘길 정도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100억 원가량의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학교 개축공사를 하고 있다. 낡은 학교환경을 최신 시설로 바꾸는 노력이 학생수 증가로 이어질 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부산시교육청이 규정한 초등학교 한 학급의 기준 학생수는 30명. 올해 1학년 신입생이 한 학급 30명 기준에도 미달하는 동·중·서·사하·영도구지역 산동네 학교는 감정 천마 좌성 좌천 청학 태종대초등 등 6개 학교에 달한다. 현재 부산지역 신생아 출생자 수를 감안하면 이들 학교는 2, 3년 안에 신입생이 10명 안팎으로 급감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초등학교의 위기는 곧바로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시작은 학교
산동네 학교의 쇠락으로 사람들은 앞 서거니 뒤 서거니 하면서 '탈 산동네' 대열에 합류한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디지 못해 산동네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학교에 나타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다시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주기 위해 이탈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 지역을 대표했던 명문고교들이 학교 위상 추락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부산고는 한 때 해운대 센텀시티로, 경남여고는 남구 용호동 메트로시티로 이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추락하는 산동네 학교에 날개는 없는가.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학생수 감소는 불가피하다며 교육당국과 교사들은 팔짱만 끼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할까.
'산동네 학교의 부활없이 산동네 부활은 없다'는 경남여고 조갑룡 교장은 "경남여고를 부산 최고의 명품학교로 만든 뒤 경남여고 주변을 명품 마을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지역의 쇠락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경남여고. 훌륭한 교육으로 명품학교를 만들면 자연히 지역은 떠나기를 멈추고 돌아오는 곳, 찾아오는 곳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젠 학교의 옛 명성회복을 넘어 경남여고를 지역의 자랑으로 만들겠다는 조 교장. 산복도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노 교육자의 30년 교직경험과 철학을 쏟아붓고 있는 찬란한 도전은 성공할까.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제1회 방과후 학교 대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전국 대상을 차지한 부산 금정구 서동 서명초등학교. 이 학교의 박원표 교장은 "인구감소로 인한 근본적인 학생수 감소는 어쩔 수 없지만 학생이 즐겁고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로 만들면 학생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지역의 원로 학자인 전 부산대 사회학과 박재환 교수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학교와 교육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에서 학생이 몰리는 경남 거창고, 폐교 위기를 넘어 입학 지원자들이 줄을 서는 공교육의 새 희망으로 거듭난 경남 김해 용산초등학교, 올해 첫 실시한 고교선택제 결과 쟁쟁한 명문고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서울 신도림고. 이들 학교는 추락하는 산동네 학교들이 벤치마킹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다.
# 부산고 박규찬 교장
- "옛 명성 되찾아 원도심 부활 견인차될 것"
쇠락하는 산동네 학교들이 옛 영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의 중심에 부산고가 자리잡고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부산 경남을 넘어 우리나라 대표적 명문고로 우뚝 섰던 부산고. 1990년대 들어 부산의 동구 중구 등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원도심에 덮친 침체 쓰나미를 부산고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동문들이 나서 부산고를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 센텀시티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동문들은 이전을 둘러싼 극심한 내홍 끝에 2007년말 학교 이전을 더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정리한 상태다.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전해서라도 학교를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동문, 부산고를 선호하지 않는 학부모들의 마음은 결국 부산고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결국 동문들이 '모교를 이대로 둘 순 없다'는데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부산고 박규찬(사진) 교장은 "2008년 3월 부임할 때만 해도 학교 이전을 둘러싼 동문 간 앙금이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해소됐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학교 발전을 위한 치렀던 이전 갈등이 동문을 하나로 결속하게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됐다는 게 박 교장의 분석이다.
그런 결속과 새출발의 산물이 바로 동창회를 중심으로 학교발전기금 100억 원 모금운동으로 나타났다. 재학생과 교사들에 대한 파격적 지원의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부산고는 학교가 자리잡은 동구는 물론 중구 등 이 학교를 학군으로 하는 지역사회의 학교이자 지역공동체의 중심입니다. 부산고의 옛 명성회복은 곧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산동네와 원도심의 부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박 교장은 "한 때 미달사태까지 빚었던 부산고가 이젠 학생들이 가고 싶은 학교, 학부모들과 동문들이 자신의 자녀를 보내고 싶은 학교로 바뀌었다"면서 "부산고가 원도심 발전과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