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산복도로 닮은 리카비토스 언덕, 일방통행으로 주차공간 넓히고 가로수를 심었다
- 그냥 산동네가 아닌 문화가 있는 도심전망대다
- 차없는 거리 따라 천천히 걸으며 구시가지 정취 즐기는 플라카 골목, 부산 구도심에 적용할 만하다
신화의 나라이자 유럽의 문화수도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직항로가 없어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도착했다. 취재팀이 찾은 지난달 중순, 아테네는 뜨거웠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강렬한 태양, 파란 하늘, 갈색 대지가 끝없이 펼쳐진 도시. 나지막하게 늘어선 건물들은 천년고도와 잘 어울렸다.
■'아테네의 전망대' 리카비토스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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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비토스 언덕(해발 277m)을 따라 거대한 구릉지 마을이 형성돼 있다. 이 언덕 정상부에는 전망대와 고급 레스토랑, 야외 음악당이 들어서 밤낮없이 관광객이 몰려든다. |
취재팀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리카비토스 언덕. 이곳은 해발 277m에 불과한 낮은 야산처럼 보이지만 이 언덕을 중심으로 빙 둘러 거대한 마을이 형성돼 있다. 리카비토스 언덕 마을은 언뜻보아 우리의 산복도로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산 아래 다닥다닥 붙은 낡은 주택들,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 부산의 동구 초량동이나 중구 영주동 산복도로를 찾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리카비토스 언덕 마을은 부산의 산복도로와는 분명 달랐다. 길 옆에 무성하게 자란 가로수와 자투리 땅에 만들어진 화단, 주거지 전용 주차시설, 다양한 휴게공간 등은 부산의 산복도로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특히 언덕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도로 양쪽에 주거지 전용주차장을 만들어 주차와 교통 소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은 부산의 산복도로 벤치마킹 사례로 손색이 없었다.
신성교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견상 우리의 산복도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산동네인데도 숲을 이룬 가로수와 골목 곳곳에 조성된 화단들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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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가지인 플라카 지역 골목에 위치한 그리스 전통식당 야외테이블에서 관광객들이 식사를 즐긴다. |
마을입구에서 리카비토스 언덕 정상까지 걸어서 걸리는 시간은 40분가량. 이 언덕은 아테네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시가지와 멀리 에게 해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360도 탁 트인 전망대와 고급 레스토랑이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정상부 바로 아래에는 야외 공연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문화와 휴식시설을 설치한 아네테 사람들의 지혜가 놀라웠다.
리카비토스 언덕 정상부까지는 케이블카로도 갈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는 관광객도 줄지어 있었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24시간 개방돼 있어 야간에도 아테네 야경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의 바다…'골목 천국' 플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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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비토스 언덕으로 가는 골목길은 무성한 가로수가 숲을 이뤘다 |
아테네의 중심인 산타그마 광장과 아크로폴리스에 둘러싸인 가장 오래된 구시가지 플라카. 이곳은 아테네를 방문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다. 플라카는 마치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곳으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고풍스런 건물과 좁은 골목길이 그물처럼 얽혀 있다. 이 골목에는 기념품 가게, 갤러리, 카페가 수많은 관광객과 뒤섞혀 활기찬 거리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골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리스의 전통 식당인 '타베르나'. 식당마다 도로에까지 늘어 놓은 테이블에서 관광객들은 식사와 음료를 즐겼다.
플라카 골목의 기념품 가게는 비록 모조품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듯한 조각품, 수공예품, 보석류, 생활용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어 관광객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눈이 즐거울 정도. 기념품 가게 하나 하나가 작은 박물관이나 조각공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995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아테네에 정착한 조문영(59) 씨는 "플라카 지역 골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국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골목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관광객들을 플라카로 불러들일까. 한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없겠지만 몇가지 잡히는 것은 있었다. 플라카 지역은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차량 진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다. 관광객들이 플라카 골목을 걸으며 아테네를 온 몸으로 배우고 느끼고 즐길 수 있게 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차량 운행을 막자 오히려 구시가지가 살아났다며 차량 통제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또 지은 지 수백 년이 됐지만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수많은 건물들과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문화 유적은 플라카의 또다른 매력이다. 지금도 플라카 지역은 '특별보존지역'으로 건물을 새로 짓거나 헐어버리는 토목공사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지난 해 그리스를 찾은 외국 관광객은 1700만 명. 인구 1100만 명의 그리스에 있어 관광산업은 그리스 국부의 원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형균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릉지에 불과한 리카비토스 언덕과 평범한 구시가지 플라카를 전통과 역사, 인간이 어우러지도록 만든 아테네인의 지혜가 놀랍다"면서 "플라카 지역의 차없는 거리, 리카비토스 언덕의 레스토랑과 전망대, 야외공연장 등은 산복도로 르네상스에도 적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 바티요티 푸소모 아테네주거센터 회장
- "아테네 사람들은 주거지로 경관 뛰어난 고지대를 선호"
"아테네 사람들은 옛날 해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구릉지로 찾아들었다 상업활동을 위해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경관이 뛰어난 구릉지에 살고 싶어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주거(정책)에 관한 연구와 협력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세계적 기구(World Society For Ekistics) 소속인 바타요티 푸소모(사진) 아테네주거센터(Athens of Ekistics) 회장은 "아테네의 구릉지 주택 가치는 점점 올라가고 있으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집과 건축물은 산 속에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한국도 산복도로, 산동네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산복도로를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아테네를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자 돌아온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학교 문화예술 공원 등 커뮤니티 공간을 유치해 재생과 복원의 거점으로 활용하세요. 또 예술마을 부자마을 일반주택가 상업지역 등 구역별로 특색있는 마을을 만든다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죠. 지역에 거점 시설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연과 감성(예술성)의 조화는 복원 사업의 핵심입니다."
아테네가 난개발에 시달리지 않고 지역마다 고도와 조망을 확보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더니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꼽았다. "아테네에서는 자신의 땅이라도 7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땅 주인이 건물을 지을 땐 반드시 시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건물의 증축과 개축이 필요하더라도 외관은 반드시 그대로 둬야 합니다."
시민들의 반대나 저항이 없느냐고 묻자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당국의 규제는 자신은 물론 이웃집이 신축하거나 수리할 때도 똑같이 적용돼요. 자기 집보다 더 많은 이웃집에도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을 보고 모든 시민은 결국 당국의 규제를 따르게 되고, 이 같은 엄격한 규제는 오늘의 아테네 도시경관을 있게 한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죠."
※ 취재협조 : (주)길평, (주) 일신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