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여년 키운 딸 취업난에 절망사
- 충격받은 부부 우울·불면 시달려
- 누나 보내고 오열 동생도 눈감아
- 자녀가 받는 충격 부모와 차이 커
- 2차피해 막을 트라우마센터 절실
- 정신적 외상 치유 범위도 넓혀야
"밤에 자다가 적어도 두세 번은 깹니다. 갑갑해서 방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닙니다. 새벽에 그렇게 다니니 남들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집사람은 잠에서 깨면 TV를 켜놓고 자다가 보다가 하면서 밤을 새웁니다. 그리고 수시로 소리없이 울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소리내서 웁니다. 낮에도 훌쩍이며 돌아다닙니다."
평범했던 50대 부부가 있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20대 딸이 올해 취업 문제로 고민하다 절망사를 택했다. 딸이 떠난 후 부부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부부 모두 기억력이 없어졌습니다. 10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마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몸이 알아서 기억을 지우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집사람이 매우 힘들어 합니다. 집 안에는 집사람 약뭉치가 가득합니다. 저는 불경을 읽으며 괴로움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부부는 딸과 관련한 가구, 물건, 옷, 이불, 책 등을 모두 없앴다. 그리고 30년 넘게 살았던 정들었던 집도 팔고 이사했다. 딸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가족에게 남겨진 상처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그 죽음이 자살이라면 더욱 커진다. 한마디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다. 문제는 단순히 고통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지 취재팀이 지난해와 올해 20·40대 절망사 377건을 분석한 결과 가족이나 지인의 자살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6건에 달했다. 모든 연령대로 확대해서 살펴본다면 그 수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특히 본지가 조사한 신고자 유형을 보면 심각성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0대는 부모나 부부, 형제, 친구·애인 등이 신고한 경우가 117건 중 70건이었다. 나머지 47건은 타인이었다. 40대는 부모나 부부, 자녀, 친구 등이 신고한 것이 전체 257건 중 138건에 이르렀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138건 중 자녀가 34건이나 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중·고생이었던 자녀가 부모 자살이 안긴 충격뿐만 아니라 죽음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아픔까지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시 자살예방센터 이미경 부센터장은 "자녀가 받는 충격은 부모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현장에 있었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아이들은 무조건 자책하는 경향이 많아 시급한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유족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A 씨는 지난해 다시 오지 못할 길을 갔다. 몇 달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동생의 뒤를 이은 것이다. A 씨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자책하다 끝내 동생을 찾아 떠났다. 이뿐만 아니다. B 씨는 3년 전 자살한 누나의 뒤를 이었고 C 씨는 몇 년 전 외로운 길을 택한 딸(당시 18세)의 기일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삶을 마감했다. 이들은 충격에 따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자책감에 빠져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트라우마 센터 절실
트라우마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대응은 미숙하다. 이로 인해 유족 같은 잠재 고위험군을 관리하고 치료할 트라우마 센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부산에는 부산시 자살예방센터와 부산 생명의 전화가 24시간 자살·위기 상담에 나서고 있는데 두 기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기관마다 주·야간 1, 2명이 전화 상담에 매달리지만 한 명당 상담 통화 시간이 긴 것에 비해 인력이 적어 한계가 뚜렷하다. 상담 인원을 늘리려고 해도 예산 제약을 받고 특히 생명의 전화는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인원이 늘지 않는 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도 버겁다. 이런 상황에서 치유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최일선에서 상담에 나서는 인력도 상담 과정이나 상담 이후 자살이 발생하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미경 부센터장은 "유족을 치료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을 치료할 통합 트라우마 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트라우마 센터는 자살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화재나 대형 사고로 인한 피해자 등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아울러야 한다"고 밝혔다.
# 엄마와 친구 잃은 20대 여성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 조언
■ 극단적 선택 극복한 사연
- "떠난 이의 남은 삶 대신 채우겠다"
- 마음 고쳐먹고 삶의 의미 찾아내
가족·지인의 극단적인 선택은 남은 사람을 그 길로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1년 새 두 차례의 죽음을 대하고도 삶의 끈을 놓지 않은 여성이 있어 희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 박정아(가명·여·29) 씨는 5년 전 어머니(당시 64세)를 떠나보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넘어져 척추에 염증이 생겼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 씨는 "발인하는 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고했다. 어머니를 보내고 1년도 안 돼 친한 친구가 삶을 비관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엄마와 친구가 없는 세상에서 왜 사는지 의문이 들었고 극단적인 생각도 수차례 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40년 이상 어머니와 산 아버지도 힘을 내 살아가는데 '내가 왜 세상을 버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친구의 남은 삶을 대신 채워야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그는 '10년만 더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힘들고 지치더라도 10년만 더 살아보고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나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일기를 쓴 것도 많은 힘이 됐다.
박 씨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며 "여행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것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권했다.
# 망자의 빚 많으면 3개월 내 상속승계 여부 행사해야
■ 사망 가족 재산정리 방법
- 상속포기땐 채무 차순위로 전가
- 한정승인은 재산범위 부채 책임
- 장단점 많아 사안별 의사표시를
20대 A 씨는 올해 초 형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유산 상속포기 신청해라. 금액이 생각보다 크다. 철없는 동생이라 미안"이라는 내용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A 씨는 재산이 없었고, 각종 대부업체와 금융권 채무만 4000여만 원(14개 기관)에 달했다. A 씨 부모는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도 삭히지 못한 채 법원을 찾아 빚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가족 사망 시 부채 상속이라는 복병이 찾아온다. 빚에 시달려 최후의 선택을 한 사람은 자기 죽음으로 빚 문제가 청산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겨진 가족에게 빚이 상속돼 새로운 고통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방치하거나, 빚이 상속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상속은 받느냐(단순승인), 포기하느냐(상속포기), 상속을 받되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채무를 부담하느냐(한정승인) 3가지로 구분된다. 단순승인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방치해도 상속을 받겠다는 의사 표시로 본다.
상속포기는 죽은 사람의 재산·채무를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한정승인은 재산 범위 내에서 채무를 책임지는 것으로 죽은 사람의 재산이나 채무가 얼마인지 모를 때 활용한다. 즉 재산이 500만 원, 채무가 1억 원이면 500만 원 한도 내에서 채무를 갚으면 된다. 한정승인(상속포기)은 사망 후 3개월 이내에 하면 된다. 3개월이 지난 뒤 거액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오면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상속포기와 한정승인은 유사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상속포기는 1~4순위까지 진행되지만 한정승인은 다음 순위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족에게 아픔을 전하지 않기 위해 1순위에서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속재산목록을 작성하고 신문공고를 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힘겨운 삶은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신청 증가에서도 읽을 수 있다. 부산가정법원에 따르면 상속포기는 2012년 1102건에서 2013년 1004건으로 줄었다가 지난해에는 1179건으로 늘었다. 한정승인도 2012년 1445건에서 2013년 1523건, 지난해 1607건으로 증가했다. 부산가정법원 정영태 판사는 "부모 빚을 떠안지 않으려는 추세에 경기둔화로 가계 빚이 늘면서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신청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취재 지원·협조
전일의료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