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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본지와 사회복지연대가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백화점 앞에서 진행한 20대 절망사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20대 남성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
- '연락해'·'밥 먹자'·'아직 젊음'…
- 설문조사서 다양한 희망 메시지
- SNS 대신 대인관계 형성 조언
- 사회적 관심·정책 강화 주문
- 일자리 창출·무료 상담도 제시
- 20대 고민 진지하게 경청해야
'연락해. 카톡 ID: pleastin****'.
본지 취재팀이 지난달 20일 벌인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여대생은 '자살을 고민하는 20대 친구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남겨달라는 코너에서 한참을 고민한 뒤 이런 내용을 적었다. 본지는 사회복지연대와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백화점 앞과 도시철도 부산대역 인근 등 두 곳에서 '20·40대 절망사 극복 리포트'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여대생은 삶이 괴로운 친구에게 '벽'으로 둘러싸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도록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줬다. 어떤 격려의 말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이 한마디가 개인주의에 물든 20대에게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여줬다. 20대 젊은이들의 희망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설문에 참여한 20대 남성은 '밥 먹자'는 글을 올렸다. 보통 사람에게는 간단한 인사말처럼 여겨지는 이 말이 세상과 단절된 친구들에게는 가슴 저미는 말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외에도 다양한 희망 메시지가 전해졌다. '죽기에는 아직 젊음' '돌이킬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세요'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20대 화이팅' '생각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세상은 넓고 길은 많습니다' 등 다양한 현실적인 충고가 많았다. 또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리 힘들어도 끝은 행복할 것이다' 등 힘든 시기를 버티면 좋아질 거라는 위안도 곳곳에서 보였다.
한 20대 남성은 'SNS를 끊으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 남성은 바쁜 약속 때문에 종종거리며 떠났지만 아마도 그는 SNS가 활성화되면서 정작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세태를 꼬집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형성하라고 조언하는 듯했다.
설문에 참여한 20대 남녀 78명은 '20대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회와 학교, 가정에서 노력해야 할 점에 대해 빼곡히 적었다.
사회에 대해서는 소외 계층과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보호정책 강화를 주문했고, 일자리 창출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한 여성은 '비정규직 고용 노예계약, 나라가 어렵다 한들 여전히 잘사는 간부들 다 없애고 뿌리 뽑기'라는 글자를 또박또박 적어 눈길을 끌었다.
아미정신건강센터 박미옥 원장은 "일자리가 없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어서, 조울증에 시달려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일자리를 찾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정부 차원의 청년 일자리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무료 상담 확대, 정신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20대 남성은 "젊다고 힘든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20대의 고민을 심층적으로 들어보고 해결 방안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학교에 대해서는 자신을 진심으로 믿는 친구 만들기 또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문했다. 한 20대 남성은 "학생들에 대한 선생님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왕따가 일어나고 있다면 친구들과 연결해주고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는 사랑·관심·대화가 주요 키워드로 꼽혔다.
# 자살생각 비율 28%…조사 결과에 충격적
지난달 20일 진행한 '20·40대 절망사 극복 리포트' 설문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결과는 충격적이다. 일반적인 설문에서는 자살을 생각한 사람의 비율이 보통 20명 중 1명(5%)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설문 결과에서 자살을 생각한 사람이 78명 중 17명,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61명으로 자살 생각을 한 비율이 28%에 육박했다.
부산의 도심에서 벌인 설문조사여서 실제 자살 생각을 한 사람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밝히기를 꺼린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설문조사 처음에는 내용을 보고 스쳐 가기 일쑤였다. 혼자서는 쑥스러워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서면 쥬디스태화백화점 앞 도로에서 조사해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한 20대 여성은 설문 내용을 언뜻 보고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리를 떴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붙잡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설문에 한두 명씩 참여했고,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적극적으로 응했다.
일정 부분 설문을 마친 뒤 취재진은 도시철도 부산대역 인근으로 이동했다. 한 20대 여성은 취재진이 권유하자 자연스럽게 다가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고 곧바로 이유를 묻자 가족관계에 체크했다.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부모님은 이혼했다"며 살짝 귀띔했다. 취업 등의 문제가 20대에게 결정적인 자살 원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했던 취재진은 폭력에 노출된 가정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살 생각을 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가족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전체 24명 중 6명(25%)을 차지했다. 이어 학업이 4명(16.7%)으로 뒤를 이었고, 채무(빚)가 3명(12.5%), 취업이 1명(4.2%)이었다. 결혼(이성) 문제라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 '금수저론'·부모이혼·폭력…그들에겐 큰 상처로 작용
설문조사와 함께 본지 취재팀은 즉석 인터뷰도 시도했다. 대상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에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이다.
설문조사 시작 후 20대 초반 남성이 설문 내용을 유심히 지켜본 뒤 조용히 스티커를 붙였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 지원을 받으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놀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모님도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우리 집은 언제나 가난하다"며 "친구들과 가정환경을 비교하면 속이 상하고 나는 왜 이러냐는 생각뿐이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 격차의 문제였다. 최근 일고 있는 '금수저 논란'과도 관계가 있었다.
가족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20대 후반의 여성은 "아버지의 폭력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더는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또 다른 여성은 "아버지의 폭력이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말한 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부모의 이혼도 큰 영향을 미쳤다. 얼굴에 그늘이 진 한 여성은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몹시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역시 더는 속내를 꺼내지 않았다. 자살을 생각하게 된 동기에 대해 가족 관계, 학업, 기타 등 세 곳에 스티커를 붙인 남성은 "가난한 집과 학업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부모님이 이혼까지 해 상처가 더 컸다"고 고민을 밝혔다.
※ 취재 지원·협조
전일의료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