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석탄재가 토사와 함께 용암이 흐르듯 사방에 흘러내렸다. 매몰자를 구조하기 위해 투입된 중장비는 엄청나게 쏟아진 석탄재 탓에 현장으로 진입하기조차 어려웠다. 참혹한 현장에 모인 이곳 주민은 “우리가 수십 년 전부터 제기한 ‘경고’를 행정이 무시하는 바람에 벌어진 인재다”고 입을 모았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상황에 주민은 공포를 호소했다. 인근 필름 제조 공장에 다니는 진남기(60) 씨는 “오전 9시께 갑자기 공장이 정전돼 뛰어나가 보니 식당 자리가 무너져 있었다. 토사가 공장 창고로까지 밀고 들어왔다”며 “담벼락이 무너지면서 ‘쾅 쾅’ 소리가 났다. ‘빨리 피하자’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산사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산사태가 발생하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야산 일대는 골목마다 시커먼 물이 끝없이 흘러넘쳤다. 일부 공장이나 주택에도 구정물이 유입됐다.

매몰된 일가족과 평소 친분이 있었다는 김상도(74) 씨는 수십 년 전에도 같은 사고가 있었는데 또다시 반복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30년 전 즈음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그때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피해가 없었지만, 별다른 안전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매몰된 일가족과) 어제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불법으로 쌓은 석탄재가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자 주민 분노도 커졌다. 구평동 이주용 6통장은 “1964년 부산화력발전소가 생긴 뒤, 그곳에서 쓰고 남은 석탄재를 이번 산사태 현장 인근에 불법으로 쌓아 두는 행태가 자행됐다”며 “이런 불법과 편법이 지반을 약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산사태가 발생한 야산은 정상에 예비군 훈련장, 중턱에 등산로가 있다. 이날 사고로 붕괴된 주택과 가건물도 중턱에 자리했다. 이 통장은 “지반이 약하다는 점을 사하구에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경찰은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탓에 지반이 약해지고, 예비군 훈련장 운동장 등에서 한꺼번에 많은 물을 내려보내는 바람에 산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주민은 석탄재가 토사 붕괴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주민 이동후 씨는 “산 아래 빌라까지 새까만 흙과 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불안한데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이날 오후 현재 나머지 매몰자 구조 작업도 여의치 않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사고 현장 주위에 중장비가 들어갈 출입로가 한 곳밖에 없어 신속한 작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토사의 양이 엄청난 데다 중장비가 작업 도중 미끄러질 수도 있어 잔해를 제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하소방서 김임석 구조구급과장은 “매몰자는 토사에서 1~2ｍ 아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태풍이 또 불어닥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추가 붕괴 등 피해도 우려된다. 부산의 산사태 위험지는 모두 250곳으로, 면적은 88만8725㎡에 이른다. 시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사태 위험지 가운데 124곳에서 사방 사업을 했다. 그러나 이날 사고가 일어난 곳은 산사태 위험지로 지정되지 않아 허점을 노출했다.  

배지열 신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