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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기업범죄다 <하>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도급 체제 건설현장…원청 처벌 강화해야 안전사고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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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청·재하청 중층적 구조에서
- 작업 최종 승인자 대기업인데
- 사고 땐 하청에 더 무거운 형벌
- 현행 산안법 사업주 처벌 어려워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여론 높아

노동자 3명이 201m 아래로 추락해 죽었다. 이들은 건물 외부 유리(커튼월)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고층용 작업대(PCS-C)를 위층으로 올리고 있었다. 발을 딛고 있던 작업대가 갑자기 벽면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상에서 콘크리트 펌프기에 레미콘을 넣던 다른 노동자도 떨어진 작업대에 맞아 숨졌다. 이 외에도 작업대 추락 직전 몸을 다친 노동자가 둘, 눈앞에서 동료가 죽는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노동자가 넷이었다. 모두 4명이 죽고 6명이 다쳤다. 2018년 3월 2일 부산 해운대구 초고층 건물 A동 55층에서 시작된 비극이다.
   
5일 부산 도심에서 건물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산재 사업장과는 관련 없음. 이원준 프리랜서 windstorm@kookje.co.kr
■“도대체 책임자가 누군가”

참사의 물리적 원인은 자명했다. 지난 2월 18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선고한 1심 판결에 참사 원인이 담겼다. 먼저 PCS-C는 콘크리트 벽에 묻힌 앵커(고정대)에 발판을 연결해 받치는 식으로 설계된다. 무게를 지탱하는 앵커는 고깔 모양 ‘클라이밍 콘’과 철근 모양 ‘타이로드’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설치되는데, 당시 작업에는 계획상 길이 300㎜ 타이로드를 쓰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50, 180㎜ 타이로드가 임의로 공급됐다. 노동자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작업대 설치를 맡은 노동자들은 타이로드를 클라이밍 콘에 최소 55㎜ 밀어 넣어야 하는데도 10.4~12.4㎜만 연결했다. 현장 책임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작업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졌다. 지지력보다 하중이 더 큰 상황을 방관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지난달 2일 민주노동 부산본부 대강당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물리적 원인과 달리, 구조적 원인을 따지는 일은 복잡했다. 책임자를 지목할 수 없는 탓이었다. 재판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건물 시공사, 커튼월 시공사, PCS-C 납품업체는 저마다 작업자들의 업무에 직접 지시·감독할 의무 또는 권한이 없고, 지시·감독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중층적 도급관계의 가장 밑에서 직접 위험에 노출되는 작업자들은 도대체 누구의 지시에 따라 작업하고, 누구로부터 안전 조치를 받아야 하는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했다.

상황은 정말 그랬다. 숨진 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고, 작업의 최종 승인 절차를 거친 상대는 건물 시공사인 대기업 건설사였다. 커튼월 시공사로부터는 앵커 설치와 작업 일정을 지시받았다. 자재 불량이나 앵커 설치 여부를 보고한 곳은 PCS-C 납품업체였다. 임금은 인력공급업체 등을 통해 받았다. 사실상 도급관계의 모든 곳에서 감독·지시를 받은 셈이다. 공사 현장에서 십장 역할을 맡은 한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휘·감독하는 관리·감독자가 누구인지 묻자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이 이런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도급관계의 최상위 사업주는 형벌을 피했다. 재판부는 중층적 도급관계의 상층부가 근본적인 재해 방지 능력과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만, 산재 특성상 실제 노동자들을 지시·감독하는 ‘아래에 위치한 주체’가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검사와 피고인 양측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도급관계 최상위자 처벌을”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노동자 안전을 책임질 능력과 최종 권한을 가진 쪽을 강하게 처벌해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용자-근로자’ 관계가 맺어진 게 아니라면 기업을 처벌하기 어렵다. 원청 기업이 늘 ‘선처’받는 근거다.

게다가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범법에 대한 고의와 위반 사실, 그리고 이런 사안이 노동자의 사망을 불렀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또 사업주를 처벌하려면 그에게 안전 확보의 법적 의무가 있어야 하고, 노동자 죽음에 대한 고의와 인과관계가 모두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자는 ‘안전보건 관리자’다. 사업주가 지정한 또 다른 노동자라는 말이다. 이렇다 보니 경영 책임자를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이에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기업살인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6월 정의당이 발의했고, 시민사회에서도 법제정운동본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 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양벌규정을 두고,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게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부산에서도 도입 논의가 뜨겁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지난달 2일 민주노총 부산본부에서는 법 제정을 위해 지역이 해야 할 일을 놓고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 형법 이론상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법률적 제삼자인 경영 책임자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게 가능한지에 관한 의문도 제기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김혜진 활동가는 “처벌을 강화하는 건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며 “예방할 수 있는데도 비용을 이유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살인’이고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에 의한 죽음에 관대해지지 않고, 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혁범 임동우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끝-

◇ 산업안전보건법 vs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쟁점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법제정운동본부 법안 기준)

처벌 대상 

실질적 계약관계의 사업주, 
안전관리 책임자, 노동자  

기업(법인), 최고  경영 책임자, 공무원

양형(사망) 

자연인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 법인 10억 원 이하 벌금 

자연인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 벌금, 법인 1억~20억 원 벌금

기업 처분 

영업 정지 

영업 정지, 보호관찰, 공공계약 배제, 영업 허가 취소

공무원 처벌 

규정 없음 

1년 이상 징역 또는 3000만~3억 원 벌금

손해배상 책임 

규정 없음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 부산 해운대구 초고층 건물 A동 
  추락 사고 1심 판결

건물 시공사 
선임 현장소장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커튼월 시공사 현장소장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PCS-C 납품업체 
기술지원팀장 

금고 8월 집행유예 1년

PCS-C 납품업체 
기술지원팀원 

금고 8월 집행유예 1년

건물 시공사 건축소장 

벌금 700만 원

건물 시공사 건축팀장 

벌금 700만 원

건물 시공사 안전팀장 

벌금 700만 원

커튼월 시공사 총괄소장 

벌금 700만 원

감리회사 총괄감리원 

벌금 700만 원

커튼월 시공사 현장소장
(B동) 

벌금 200만 원

건물 시공사 

벌금 1000만 원

커튼월 시공사 

벌금 1500만 원

PCS-C 납품업체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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