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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피란수도 부산…1023일간의 이야기 <1> 프롤로그

부민동은 피란시절 한국의 용광로…거리에서 마주한 그 시절 기억

  •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  |   입력 : 2022-03-22 19:34:5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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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차례 피란수도 선정됐던 부산
- 당시 공공기관·기업 모두 몰려와
- 1·4후퇴 뒤 인구 100만 육박도
- 부민동 행정·입법·사법부 한자리

- 임시수도 요충지 역할한 그 동네
- 파란만장했던 그 시절 역사 회상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사의 최대 비극으로서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며, 동족 간 대량 살상이 발생한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톱질전쟁’으로 비유된다. 서로 밀고 당기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난민을 발생시키는데, 특히 한국전쟁은 대거 피란민을 발생시켰다. 인천상륙작전 이후로 평안도와 함경도까지 밀물처럼 올라갔던 유엔군과 한국군은 엄청난 중공군의 개입으로 썰물처럼 빠져나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이 대거 발생했다. 1950년 12월, 철수작전이 벌어지는 흥남부두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살을 에는 찬바람과 거친 파도를 헤쳐 남으로 오던 피란민이 짐을 내린 곳은 부산이었다. 피란민에게 부산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로 여겨졌다.
동아대 부민캠퍼스 입구부터 임시수도기념관까지 이어지는 임시수도기념거리. 공부하는 피란민 조각상, 한국전쟁 당시 생활상을 표현한 벽화 등 피란수도와 관련한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거의 모든 곳이 화약고로 변하였음에도 부산 일대만큼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안전지대였다. 대한민국 정부도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 정착하여 전쟁 동안 피란 정부를 운영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피란민의 ‘막다른 둥지’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최후의 보루’였다. 국토가 좁은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상 전쟁이 터지고 정부가 열세로 몰리면 필연 부산으로 올 수밖에 없다. 영남 끝에 있는 부산은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의 요충지,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기지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유엔군과 국군이 안전하게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최적의 항구였다. 게다가 부산은 식민지 시절 급속하게 성장한 근대도시로, 서울에 버금가는 도시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정부와 함께 뒤따르는 피란민을 수용할 수 있는 최남단의 도시는 부산밖에 없었다.

사적 제546호인 임시수도기념관. 일제 강점기인 1925년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은 것이다.
서구 부민동은 피란수도의 요충지였다. 부민동 일대는 현대사의 중심지로 역사적 가치가 큰 장소다. 국가권력을 구성하는 삼권 기관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떠올려 보자. 행정·입법·사법기관이 한자리에 모였던 때가 있었던가. 물론 그것은 한국전쟁이란 특수한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민동에는 행정부 외에도 입법부(국회)와 사법부(법원)가 내려와 피란 생활을 시작하였다. 경남도청은 임 시정부청사, 무덕전은 임시국회의사당으로 운용되었고, 대법원은 부산지방법원 청사에 입주하였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을 ‘임시수도’라고 불렀다. 요즘은 임시수도보다는 ‘피란수도’를 주로 사용한다. ‘임시’라는 말이 특정 기간 내 ‘일시적’, ‘제한적’이란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임시수도’ 대신 ‘피란수도’를 사용한다고 해서 잠정적 수도였던 역사적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쟁과 피란’의 역사적 사정을 잘 담고 있는 낱말이기에 피란수도의 개념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였던 동아대 석당박물관. 원래는 1925년 준공된 경남도청 청사였다.
부산은 두 차례 피란수도로 선정되었다. 1차는 1950년 8월 18일에서 10월 26일까지, 2차는 1951년 1월 3일부터 1953년 8월 14일까지였다. 1차 피란 시 30만 명이, 2차 피란 시 26만 명이 부산으로 유입되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부산에 정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 두 차례 피란수도가 된 이 유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나아져 서울이 수복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찬바람과 함께 대륙에서 밀려온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1·4후퇴가 일어나자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외에도 학교와 기업, 각종 단체, 외국의 대사관 등 모든 공공기관이 부산에 정착하였다.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부산의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흔히 피란수도 부산을 ‘대한민국의 심장부’라고 한다. 피란수도 기간 내내 대한민국의 심장부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뜨겁게 쿵쾅거리며 터질 것만 같았다. 부산은 피란 시절의 성장통을 거치며 ‘거대한 용광로’로 거듭났다. ‘부산’이라는 용광로는 남북한의 문화를 모두 흡수하여 뜨겁게 녹여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였다. 그 고통과 열기를 견뎌낸 결과로 대한민국호는 오대양 육대주에서 순항하지 않았던가.

피란 시절 서구 부민동은 대한민국의 용광로에서 가장 뜨거웠던 장소였다. 3년 동안 부산 서구 부민동이 써내려간 역사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사가 되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물론이요, 전 세계의 시선이 지금의 임시수도기념거리 일대에 맞춰져 있었다. 피란 시절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후문 일대에 조성된 임시수도기념거리를 직접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 거리는 파란만장했던 임시수도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 임시수도 1023일…따져보면 1025일

- 기점을 하루 늦게 계산
- 윤년도 반영되지 않아

언론과 방송매체에서는 부산의 임시수도 기간을 ‘1023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실제 임시수도 기간은 ‘1025’일이다.

임시수도 1차 기간은 1950년 8월 18일에서 10월 26일까지(70일, 10월 27일 서울로 환도), 2차는 1951년 1월 3일부터 1953년 8월 14일까지(총 955일, 8월 15일 서울로 재환도)였기 때문이다.

1023일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2차 임시수도 부산의 기점을 1월 4일로 하였고, 윤년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국방부에서 발간한 ‘한국전란 1년지’에 따르면 부산에 재차 천도한 일시는 1월 3일이다. 1월 4일은 북한군이 서울을 이미 점령한 날짜이므로 논리상 맞지 않는다.

또한 1952년은 4년에 한 번 오는 윤년으로 그 해의 일수는 366일이다. 그러므로 임시수도 기간을 정확하게 따져보면 총 1025일이 된다.

그럼에도 이런 날짜 계산은 무의미할 수 있다. 1953년 7월에도 각 정부 부처가 이미 서울로 올라가서 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서 시행된 천도 선포는 형식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각종 미디어에서 임시수도 기간을 1023일로 광범위하게 소개하고 있어 가급적 혼란을 주지 않고자 이 글에서도 ‘1023일’을 사용했다.

정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공동기획 : 부산광역시 서구·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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