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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4번 입대해 2차례 참전…총알 피했지만 병마로 쓰러져”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5> 뉴질랜드 故 레스 에버릿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06-05 19:49:2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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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가난 피해 선택한 군대
- 처음 참전한 2차 세계대전 후
- 병원서 일하다 한국전쟁 자원

- 이동식 치과부대 위생병 근무
- 갑작스러운 위출혈 악화로 귀환
- 7년간 요양…급격히 건강 잃어

- 한국전쟁 연구하는 아들 케빈
- “父, 살았으면 韓분단 슬퍼할 것”

“한국전쟁에 참전 중 아버지는 갑자기 위 출혈을 겪었습니다. 해를 넘겼지만, 상태가 악화됐죠. 치료받지 않으면 하루 만에 사망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병이 아버지를 괴롭혔습니다.”
케빈 에버릿의 아버지 레스 에버릿이 한국전쟁 중 38선이 표시된 팻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케빈 에버릿 제공
뉴질랜드 오클랜드 교외의 코니퍼 그로브에서 만난 케빈 에버릿(61)이 전쟁터에서 급거 귀국한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1952년 4월 6·25전쟁에 참전해 치위생병으로 활약한 레스 에버릿. 1923년 태어나 경제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미성년의 나이에 군을 선택했다. 지독한 가난 대신 택했던 군대가 아버지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아버지는 1930년대 경기 불황 탓에 바다에 버려진 과일을 주워 먹을 만큼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17살의 나이에 돈과 먹을 것 때문에 입대했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이어 “할머니는 아버지가 7살 때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와 일곱 남매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하숙집 같은 곳에 함께 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 장난감을 술을 사기 위해 팔기도 한 것 같아요. 아버지는 할아버지 허락 아래 학교를 그만두고, 웰링턴에서 꽤 유명한 빵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고 말했다.

■네 번의 입대

레스 에버릿(맨 왼쪽)이 뉴질랜드군의 이동식 치과 부대원과 함께 찍은 사진. 케빈 에버릿 제공
아버지가 뉴질랜드 육군에 처음 입대했던 1940년 7월은 혼란의 시기였다. 당시 1939년 9월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태평양 도서 국가를 잇달아 침공한 일본의 야욕은 뉴질랜드 코앞까지 다다랐다. 첫 입대 후 군을 나왔던 아버지는 재입대해 생애 첫 번째 전쟁터로 향했다.

아버지는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사이의 태평양 지역의 섬으로 이뤄진 솔로몬 제도에서 공군 조리사로 복무했다. 빵집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렸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태평양전쟁 뒤 제대했던 아버지는 1946년 3월 일본 점령군으로 재입대했다. 군대와 세 번째 인연이었다. 세계 질서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재편됐고,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1947년 9월 아버지도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이듬해 오클랜드로 이주한 아버지는 남자 간호사로 취업했다. “아버지는 다재다능했습니다. 실용적인 기술을 많이 알고 계셨죠. 이런 점을 저에게 많이 물려주신 것 같아요.”

아버지의 군 생활과 전쟁터의 삶은 그렇게 끝나 가는 듯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는 오클랜드의 한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돌연 한국전쟁에 자원했다. 네 번째 입대이자 두 번째 참전이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군 복무 시절 경험했던 전우애와 흥분 같은 걸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많은 뉴질랜드 군인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자신이 직접 참전하는 방법을 택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상관이었던 앨런 컬 소령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컬 소령은 아버지가 수년간의 군 복무 후 민간인 생활에 다시 적응하는 게 어려워 자연스럽게 한국행을 택했을 것이라 장담했습니다.”

아버지는 위생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길 원했다. 뉴질랜드군은 아버지에게 치위생병이란 보직을 주었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 치의학 관련 특별 훈련을 받았다. 아버지는 한국에 도착해 컬 소령 등 5, 6명의 전우와 함께 부산 등에서 뉴질랜드군의 이동식 치과 부대에서 복무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서울 북쪽의 최전방과 인접한 지역이었다.

아버지의 이동식 치과 부대는 뉴질랜드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치아 관리를 맡았다. 당시 뉴질랜드인은 충치로 악명 높았지만, 이동식 치과 부대의 정기적인 치아 검사로 전장에서 갑자기 발병하는 치통은 거의 없을 만큼 성과를 올렸다.

■죽을 고비

케빈 에버릿이 아버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태훈 PD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 주로 안전한 지역에 머물렀다. 적의 게릴라식 후방 공격이 가끔 있었지만, 큰 위협은 없었다. 전쟁터의 총알이나 포탄은 피할 수 있었지만, 몸 안의 병은 통제하기 어려웠다. 1953년 멀쩡하던 아버지에게 갑자기 위 출혈이 생겼다. 유엔군 소속의 인도군 의료지원 부대에서 치료받았다. 그러나 1954년 또다시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며 상태가 악화했다. 그 사이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마무리됐다. 아버지는 전쟁 후에도 한국에 남아 복무를 연장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증상은 쥐에 붙은 벼룩에게 물려 고열에 시달리며 엄청난 출혈을 보이는 ‘흑사병(페스트)’과 닮았다. 상황이 심각했다. 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1954년 7월 겨우 몸을 추스른 아버지는 뉴질랜드로 귀환했다.

정신 없이 치료받던 중에도 아버지는 한국을 떠나기 전 부산 남구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전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버지는 유엔공원의 초기 모습을 담은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뉴질랜드로 돌아왔지만, 일상생활에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무려 7년간 요양을 해야 했죠. 이후 아버지는 소방관을 하기도 했고, 오클랜드 파파쿠라 시의회에서도 일 했어요.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아 일찍 은퇴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게 군 복무의 영향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여러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말을 아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국을 한두 차례 언급했다. “아버지는 제 여동생에게 ‘침을 뱉었을 때 그게 땅에 떨어지기 전에 얼었다’고 말했답니다. 아버지는 저에겐 전쟁은 결코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아버지는 55세 이전까지는 건강하게 지냈지만, 56세 이후 급격히 건강을 잃었다. 결국 심장 수술을 받은 뒤 6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레스 에버릿의 사진과 네 번의 입대로 받은 훈장들. 케빈 에버릿 제공
케빈은 아버지에게서 한국전쟁과 관련해 많은 이야길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뉴질랜드에서 ‘잊힌 전쟁’으로 알려진 6·25전쟁을 알리기 위해 2017년부터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있다. 뉴질랜드 군인의 사진 일기 지도 등을 찾고 이를 SNS 등에서 공유한다.

“아버지가 참전했던 한국전쟁을 더 알고 싶고 주변에 널리 알리고 싶어 이 일을 합니다. 전쟁과 관련해 책이나 이런 걸로도 배울 수 있지만, 당시 일지나 일기 등을 찾아 그를 기반으로 배우고 알리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희생과 헌신을 알아보는 계기도 돼 정말 좋습니다.”

케빈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을 포함해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한 이유를 ‘진정한 평화를 원해서’라고 꼽았다. “아일랜드인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평화를 얻기 위해 누구든 죽일 것이다’고 말합니다.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일랜드 혈통인 아버지는 이것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평화를 얻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아버지가 계속 살아 있다면 올해는 아버지가 태어난 지 100번째 해입니다. 아버지는 한국이 여전히 분단돼 있어 슬퍼하겠죠. 그러나 한국이 전쟁 후 발전하고 번영했다는 걸 알았겠죠. 그리고 뉴질랜드 사람을 매료시킨 현대자동차에 타는 것을 기뻐할 겁니다”고 말했다. 그도 지금 현대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뉴질랜드 오클랜드=김진룡 기자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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