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최초 국제 콩쿠르 우승자
- 65년 타향살이 마치고 귀국
- 영광·명예 좇는 삶 대신
- 예술 나누려 하는 고운 심성
- ‘진짜 어른’과 동행 꿈꾼다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슈베르트 즉흥곡 내림 사장조가 울려 퍼졌다. 영구 귀국한 피아니스트 한동일(78)은 이날 새로운 삶의 여정을 알리는 꿈결 같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이 곡은 12세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떠난 뒤 65년의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처럼 외국 생활이 꿈을 꾸듯 부드러운 삶으로만 이뤄졌던 것은 아닐 것인데, 거장 한동일을 지켜주고 위로한 음악이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 중 가장 아름답다는 이 곡이라 하니 거장의 심성 또한 고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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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한동일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이날 열린 ‘한국의 자존심 거장 피아니스트 한동일 콘서트’는 한국국제예술교류협의회가 주최했다. |
이날 공연은 한국국제예술교류협의회가 주최한 음악회로 피아니스트 한동일의 협연과 김현국의 지휘,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필하모닉이 함께했다. 전반부는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과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후반부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21번 일명 ‘엘비라 마디간’이 연주됐다.
앙코르는 한동일 독주로 슈베르트 즉흥곡 내림 사장조가 연주됐다. 그는 “최근 대한민국 여권이 나왔다”고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알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필자는 이제 한국에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시골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음악회를 가본 적 없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이 낳은 피아니스트 한동일에게 한국 음악인 최초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의 모습은 사라졌다. 과거 음악인에게 붙일 수 있는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는 사라지고 ‘인간 한동일’의 모습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일순간 겹쳐졌다.
풍운아 채현국(84·효암학원 이사장)이 책에서 밝힌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원로의 꿈과 피아니스트 한동일의 음악 이야기는 같은 맥락이었다. 원로(元老)는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 등으로 풀이된다. 경험과 공이 많은 원로가 대접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가 어지럽고 어려울 때 오랜 경험과 지혜로, 시대를 아우르는 삶과 언어로, 세상에 위안과 위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원로’는 과연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채현국 선생은 나이 듦을 이야기하면서 ‘어른’과 ‘꼰대’를 구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매 순간 생각하고, 배우고, 배려하여 서로 위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어른’으로, 늙어서도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는 사람을 ‘꼰대’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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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일 선생 |
시대의 원로를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필자는 부산 문화예술계 특히, 음악계에서 이러한 어른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거장 한동일을 소개하기엔 이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한 그의 인생 3악장은 영광과 명예를 뒤로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전하고자 한다. 시골 구석구석을 찾아 음악 이야기를 전해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기에 이제는 좀 편안해지고 싶다, 많은 제자를 키웠기에 조금은 대접받아도 되지 않는가 등이 아니라 그 많은 자신의 예술 경험과 자산으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눔을 몸으로 실천하며, 배려의 몸짓으로 공감하고,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려는 원로의 삶은 멋지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궁색해지고 본인 의사를 독단적으로 피력하여 주변을 힘들게 하는 꼰대의 삶. 이는 반드시 어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의 원로를 대접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더욱 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필자에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비쳐 스스로의 삶과 걸음걸이를 조심하게 만든다.
1악장이 12세 어린이의 한국, 65년 타국 생활이 2악장이라면, 인생 3악장은 주변에 위로와 위안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하는, 새로운 한국인을 꿈꾸는 어른 한동일 선생과 만남이 행복했던 하루였다. 이러한 원로와 더불어 같은 길을 가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할 때다.
음악평론가·문화유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