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역 가치 커 바위 크기별 과세
- 갯벌생물 32종 역사·문화 풀어
- 바다와 사람의 공존·공영 강조
- 생생한 사진, 직접 걷는 기분도

“조선시대에 바다에서 나는 것 중에서 미역이 재산 가치가 높았다. 그래서 미역바위의 크기에 따라 논과 밭처럼 세금을 부과했다. 힘이 있는 권문세도가들은 국가 재산인 미역바위를 차지하고 어민들에게서 소작료를 받기도 했다.”

미역밭은 섬사람들에게 논밭처럼 소중하다. 마을 공공기금을 마련하고, 아이 학비에도 보태고, 쌀과 소금을 구입했다. 사진은 미역을 말리는 어촌 풍경이다. 이글루 제공

앞에서 인용한 문장은 김준의 ‘우리는 갯벌에 산다’의 미역을 소개하는 글 중에서 뽑았다. 글의 소제목이 ‘바다의 화폐 미역’이다. 바다와 갯벌이 내어주는 것인데도 권문세도가들이 미역이 자라는 바위를 차지하고 어민에게 소작료를 받았다니, 미역의 가치가 짐작된다.

하긴 한국인의 핏속에는 미역 국물이 흐른다고 할 만큼, 우리는 미역국을 많이 먹는다. 우선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가 미역국을 드셨다. 그리고 매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먹는다. 못 먹으면 섭섭하다. 오늘날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도 찜질방에서 K-푸드 ‘미역국 먹기’ 체험을 한다. 우리 민족 밥상에서 미역은 늘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바다의 화폐라고 할 만 하다.

김준의 ‘우리는 갯벌에 산다’는 갯벌 생물을 통해 갯벌의 역사와 문화, 어민의 삶, 갯벌 음식, 슬로푸드 운동, 생태계 변화, 기후변화 등을 살펴보는 책이다. 갯벌 생물은 오랫동안 갯벌에서 살아왔고,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했다. 인간은 갯벌 생물에 기대어 살아왔다. 갯벌은 생물과 인간이 공존공영하며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김준 저자는 30년 넘게 섬과 바다를 다니면서 섬 문화/ 어촌 공동체/ 갯벌 문화 등을 연구해 오며 ‘바닷마을 인문학’ ‘대한민국 갯벌 문화 사전’ 등 여러 책을 썼다. 바다와 갯벌 냄새가 물씬 나는 ‘섬과 여성’, ‘바닷물 백 바가지 소금 한 줌’, ‘갯살림을 하다’, ‘소금밭에 머물다’ 등 해양 문화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지금도 갯벌과 바다, 섬과 어촌을 찾고 그 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도 저자가 수십 년간 발품을 팔아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미역밭 이야기를 좀 더 읽어보자. “해녀들은 물속에서, 주민들은 물이 빠져 드러난 갯바위에서 삽처럼 생긴 ‘썰개’라는 도구를 갖고 갯바위를 문지르고 있었다. 미역 포자가 잘 붙도록 잡초를 제거하는 ‘갯닦이’였다.” 여름철 바닷물이 많이 빠졌을 때는 미역이 햇볕에 데쳐지지 않도록 바닷물을 끼얹는 물주기를 물이 들어올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올여름처럼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면 더 힘들겠다. 그야말로 ‘미역 농사’이다. 앞으로 미역국을 만나면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

미역뿐이랴. 이 책에는 갯벌이 품고 키워낸 생물이 풍성하다. 제1부 ‘갯벌은 삶이다’는 김 미역 감태 매생이 톳 모자반 우뭇가사리 다시마 등 8종. 제2부 ‘갯벌은 단단하다’는 굴 꼬막 동죽 백합 바지락 가리맛조개 개조개 홍합 등 8종. 제3부 ‘갯벌은 다채롭다’는 짱뚱어 망둑어 개소겡 소라 피뿔고둥 전복 고둥 군소 등 8종. 제4부 ‘갯벌은 푸르다’는 꽃게 민꽃게 칠게 낙지 해삼 멍게 미더덕 개불 등 8종. 모두 갯벌 생물 32종을 살펴본다. 저자가 찍은 생생한 사진이 풍부해, 바다를 바라보고 갯벌을 걷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갯벌 생물의 이름을 불러보는 동안 군침이 돈다. 미역국이 익숙해 미역부터 읽었더니, 미역국 생각이 절로 난다.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맛보았던 갯벌 생물이 있다면 그 부분부터 찾아 읽어도 좋겠다.

갯벌은 농촌의 논밭처럼 어민들의 텃밭이고, ‘바다 벌판’이다. 생물자원의 보고이며 지구상에 있는 완전성을 갖춘 마지막 생태계인 ‘갯벌’이 품고 키워내는 생물도 고맙고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