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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첫 영화의 거리에 가다 /박형섭

잘 만든 영화, 단순한 산업 아닌 예술로 바라보는 인식 우선돼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0 21:02:4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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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옹은 세계 최초로 영화를 촬영한 도시로 유명하다. '몽플레지르 뤼미에르(내 기쁨 뤼미에르)'라는 지하철 역 옆의 '뤼 프르미에 필름(첫 영화거리)'의 실재(實在)가 그것. 이곳이 바로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뤼미에르 공장의 노동자들'을 찍은 거리다. 길을 따라서 뤼미에르 박물관과 영화연구소, '영화제작자의 벽'이 있고, 건너편엔 루이 뤼미에르영화학교가 있다. 프랑스는 미국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에 맞서며 자국이 세계영화의 중심이라고 여긴다. 뤼미에르나 멜리에스와 같은 초창기 영화계의 개척자들을 배출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수준 높은 관객의 영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칸 영화제와 같은 세계영화축제를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영화를 앞세워 영화를 예술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고, 작가주의, 누벨바그, 누벨 이마주 등의 새로운 영화 이론을 펼치면서 영화가 단순히 대중적 오락물로 추락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지난 여름 나는 리옹의 뤼미에르 박물관을 찾아갔다가 뜻밖에 '영화제작자의 벽'에서 이창동이란 이름을 발견했다. 또한 우연히 집어든 지역 신문에서 이창동의 영화 '시(poetry)'를 소개하는 기사를 접했다. "영화 '시'가 장애를 극복하며 상투성을 깬다"는 부제를 단 기사는 '시'가 8월 25일 프랑스에서 개봉한다는 소식과 함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싣고 있었다. 배우 윤정희(미자 역)가 시를 짓기 위해 손에 붉은 사과를 쳐들고 유심히 바라보는 광경이었다. 낯선 이방의 방문객에게 이 두 사람은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창동은 영화 '오아시스', '밀양' 등으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고, 올해 칸 영화제에서 '시'로 각본상을 수상한 터였다. 그는 영화 '시'를 윤정희에 대한 오마주로 출발했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긴 세월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진정한 배우다. 배우의 극적인 존재감은 연기력으로 표출되며 영화의 수준을 결정한다. 배우에겐 연기자로서의 천부적 재능도 필요하지만 영화작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오랜 경험과 숙련이 요구되는 것이다. 가령 이미지 만들기의 작업에 수반되는 프레임, 조명, 음향 등에 대한 감수성은 절대적이다. 영화를 본 관객은 가장 먼저 배우를 떠올릴 것이며,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윤정희의 연기는 오랜 영화적 경험과 실제의 삶 속에서 몸에 밴 인간적 특질에서 나온다. 표정, 목소리, 웃음, 몸짓, 의상 등 그녀가 만들어내는 기호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는 활동사진인 동시에 움직이는 시다. 배우의 모든 것은 공간에 씌어진다. '시'가 서정시의 완결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건 감독과 배우의 영혼의 풍경화로 그려진 결과인 것이다.

뤼미에르, 이창동, 윤정희는 모두 '완벽한' 영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역사적 장소인 첫 영화의 거리를 거닐며 한국의 영화 예술가들을 되새겨본 것은 여행 중 얻은 의미 있는 선물이다. 거리를 빠져나오며 하나의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인들은 '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시'는 다분히 프랑스적 영화다. 대중적 오락성이 아니라 작품성에 역점을 둔 예술영화인 것이다. 취향의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에게 '시'는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할리우드의 거대 공룡이 스크린을 독차지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것은 획일성으로 후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영화인들이 스크린 쿼터제 사수를 위해 시위할 때 프랑스 지식인들이 예외적으로 지지성명을 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심오한 예술적 표현은 즉각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심미적 체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파리의 시네마테크에서 지난날의 고전영화들인 알프렛 히치콕, 에이젠슈타인, 쿠로사와 등의 회고전이 반복적으로 열리는 것은 그런 연유다.

시월 첫 주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된다. 해운대 센텀시티에는 부산영상센터가 건립 중이다. 부산이 진정 아시아 영화의 중심 도시가 되려면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단순히 문화산업이 아니라 예술로 바라보는 인식이 우선이다. 그것이 영화제의 목표인 우수영화의 발굴과 소개, 영상예술의 발전을 위한 길이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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