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일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통일세 제안을 내놓고, 현대 세계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이 9월 28일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공식화되면서 불거진 현상이다. 마침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어느 세미나에서 지적했듯이 한반도가 역사적 분기점에 들어서고 있으며, 전 세계가 한반도의 미래에 이목을 집중하면서 우리에게는 긴 안목과 전략적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 시기 핵문제 돌출로 인한 한반도 위기국면의 주기적인 반복 속에서 평화구축 문제가 가장 절실한 과제이자,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강조되어 왔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집권 10년의 남북교류협력시대에 통일 논의는 북한을 자극시킬 뿐만 아니라, 통일의 방식과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둘러싸고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자제되고, 유보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변수와 더불어 3대세습의 실패를 점치는 보수층의 시각이 우세하면서 통일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선 평화구축이나 교류협력 의제는 현안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열띤 논의들은 마치 통일로 직행하는 코스를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북한 정권의 내구력은 과대평가되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과소평가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내가 적지 않은 탈북자들과의 면담조사를 통해 얻은 잠정적 결론은 북한의 집권 엘리트층과 중간 간부들은 남한과의 통합에 따른 개개인의 미래 보장에 대해 비관적 혹은 불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날로 커져가는 남북한의 총체적 국력 차이는 북한의 위기의식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남북한 균형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북한은 균형 회복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이는 오히려 피폐한 북한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면서, 민심을 뿌리째 뒤흔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불균형 자체가 한반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점이다. 비핵화도 어려운 숙제이지만, 남북한의 균형회복과 남북한의 안정적 발전이 김정은 후계체제가 공식화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실현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북한은 지금 중국의 정치, 경제적 영향권 아래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속수무책으로 영구 분단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연 이 많은 난제들을 풀 해법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 바로 통일 담론을 확산시키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통일 논의도 통일비용과 이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라는 편협한 시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얼마 전 1989년 통일을 이룬 독일을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우리나라의 통일비용이 900억~6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GDP 대비 29.2~109.9%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남북한 인구비율과 소득격차를 고려할 때 이 같은 비용부담은 우리 국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민들이 통일을 반길 리 없다. 통일은 이를 추진해야 하는 한국의 통일세대에 경제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주며, 그 결과 이들로 하여금 통일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게 하는 딜레마가 있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통일 이전에 남북 경협을 상당수준으로 활성화시켜 놓는 일이다. 이는 통일 뒤 한국 경제가 부담해야 할 비용과 편익을 장기간에 걸쳐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다. 또한 남북경협은 남북한 균형과 안정적 발전을 이루게 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나아가 북한 민심을 통일에 대한 낙관적인 인식으로 전환시키고, 북한 스스로의 경제적 자생력을 키워가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듯이 언젠가 이뤄질 통일은 '재통일'보다 새로운 '국가건설'(Nation-building)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의 자원·인력·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자연스레 통일비용보다는 통일이익이 훨씬 부각될 것이다. 통일 논의는 이런 방향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옳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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