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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키니와 정치 /차재권

저급한 감성코드로 점철된 과거정치

박근혜 이미지 변신…기대보단 걱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24 20:22:0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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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학창시절 비키니 차림으로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2003년 국정홍보처가 발간한 화보집에 실렸다는 그 낡은 흑백사진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문제의 비키니 사진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여성성의 노출을 통해 강성의 이미지를 순화하는 것이었다면 네티즌의 호의적인 반응은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선 전략 변화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미지를 앞세운 감성정치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며 또한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1960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닉슨 후보와 민주당 케네디 후보 간에 벌어졌던 사상 초유의 TV토론은 케네디의 젊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닉슨의 정책적 노련함을 이긴 '이미지 정치'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오세훈 서울시장, 한나라당의 홍정욱·나경원 의원, 민주당의 전현희 의원 등 출중한 외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국내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레이건, 클린턴 같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 또한 좋은 비주얼로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인물들이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당내 경선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페미니즘적인 인물로 자신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가공해 냄으로써 감성정치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면에 '감성정치'의 저급함과 '이미지'에 중독된 우리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가 그간 길지 않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여러 형태로 감성정치의 폐해를 경험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중 가장 폐해가 컸던 감성정치의 유물은 바로 영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패거리 정치'의 이면에는 조금이라도 가까운 DNA와 어울리려는 동류의식의 감성이 꿈틀대고 있다. 그런 지역주의가 우리 정치에 어떤 폐해를 안겨 주었는지는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편협했던 감성의 감옥에서 이제 막 해방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정치 소비자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감성정치'의 코드가 새로운 감옥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박 전 대표의 '감성정치'가 비키니 사진 하나만으로 끝날 태세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 18일에는 박 전 대표가 직접 모교인 서강대학교의 일간지 대학 홍보 광고에 모델로 나서는 등 최근 들어 부쩍 '감성'에 호소하는 행보가 잦아지고 있다. 최근 한 민간방송국의 여성 대통령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박 전 대표의 다음 행보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여성이 지닌 고유의 모성 본능과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모든 정치적 행보는 감성코드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에게는 감성을 넘어서는 이성적인 그 무엇, 즉 정치적 소신과 이념 그리고 정책이 부재하다는 날 선 비판이 많다. 그럼에도 그의 감성정치 행보는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2012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처럼 적극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박 전 대표의 첫 작품이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박 전 대표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은 2012년 대선의 정치적 경쟁 코드가 이성에 호소하는 정책 중심의 코드이기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이미지 중심의 코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 대한민국 정치의 또 다른 신파극이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대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에서 감성과 이미지에 호소하는 전략에 기대려는 심정을 일견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가공된 감성과 이미지 속에 정작 우리 정치가 올곧이 지켜나가야 할 정책선거의 이상이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가 정말 훌륭한 정치 지도자이고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그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가 '감성정치의 비키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논리적 설득과 깊은 성찰에 뿌리를 둔 정책과 비전의 콘텐츠로 승부하는 진정한 정치적 승부사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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