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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행정고시제도와 신뢰 /유일선

특별채용 논란은 공정성·객관성 문제

대학 입학사정관제도 신뢰가 바탕돼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31 20:08:5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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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가 유명환 전 장관과 전 감사원장 등 외교관과 고위 공무원의 자녀 등 10명을 특별채용하는 과정에서 필요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응시생을 채용하거나 자격조건을 변경하고 면접위원을 자의적으로 선정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세간의 비난을 샀다. 외교관 자녀 대부분이 주미대사관 등 '인기 공관'에 배치된 사실도 확인됐다. 뒤이어 이재오 특임장관 조카의 특채 의혹, 현역 장성 아들들의 '꽃보직' 배정 감사자료 등이 한꺼번에 발표되면서 "아직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는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그 과정에 특채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결국 2015년까지 신규 5급 공무원 절반을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해 특채하기로 한 행정고시 개편안이 여론에 밀려 백지화됐다. 현행 고시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오래된 것이다. 몇 년간 암기 위주의 공부에만 매달리고 지필고사로 시험에 패스한 이들이 직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까. 한 번의 평가로 평생 경쟁이나 탈락 없이 정년까지 출세를 보장하는 것은 형평상 문제가 있지는 않는가. 전문성을 겸비한 민간인을 직책과 직분에 맞게 수시로 특별 채용한다면 공직사회 전체가 긴장을 유지하고 경쟁적으로 자기계발에 힘쓸 것이다. 행정서비스의 질도 더욱 개선되고 말이다.

문제는 신뢰다. 고시제도의 폐해가 심각해도 특별채용이 고시만 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질 수 없다면 그 공정성을 국민 다수가 신뢰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대로 운용될 수 없다.

도입 초기 사교육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것처럼 홍보하던 입학사정관제를 보자. 수능시험은 몇몇 주요과목의 객관식 지필고사로 전국의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운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맞는 말이다. 그에 비해 사정관제는 생활기록부, 추천서, 자기소개, 수상기록 등을 토대로 다각도, 심층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한다. 말대로라면 수능의 대안이 될 만하다. 그러나 그 제도가 도입된 뒤 사교육을 불식시킬 만한 효과가 있었는가. 일단 내신은 학교별 수준 차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기소개서는 대필하는 사설기관이 생겼고 추천서도 본인이 쓰고 추천자가 사인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거기에 사정관의 전문성 시비까지 더해져 사정관제로 인한 효과는 교육부의 어마어마한 지원예산액에 비해 성과가 초라하다.

가능하다면 우리도 종래의 양적인 평가에서 질적인 평가로 평가방법이 달라져야 옳다. 인간의 총체적인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질적인 평가가 훨씬 유용하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정확히 정량화할 수 없는 인간능력을 평가자의 주관적인 평가에 맡길 경우 기준에 대한 시시비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평가자의 전문성, 공정성, 독립성에 대한 믿음으로 그 결과를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에서라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것이 있다. 언뜻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다른 개념이다. 사회간접자본이 유형의 물적 인프라라면 사회 자본은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신뢰, 협동, 제도, 사회규범 등 무형의 사회 인프라를 의미한다. 사회 자본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남(R. Putnam)은 신뢰를 사회자본의 가장 중심적 요소라고 역설했다. '역사의 종말'로 널리 알려진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석학이다. 그들은 서구사회 번영의 원인으로 신뢰를 제시한다.

이번 행정고시 개편안의 백지화는 분명 평가방법의 후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고시의 병폐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선발자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조건에서 어설픈 질적평가의 도입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유명환 전 외교장관이 잘 보여주었다. 입사시험에도 지필고사나 외국어 성적 대신 심층면접, 인턴제 도입 등 다양한 평가방법이 개발되고 입시에서도 다양한 전형방법이 개발되는 변화의 시기에 이번 외교통상부의 추문은 어렵게 쌓은 사회적 신뢰를 흔들어 우리의 평가시스템을 뒤로 후퇴시켰다는 점에서도 비난받아야 한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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