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항쟁 20년' 기획물로 본지는 항쟁 당시 부산지역 주역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설문에는 '완전한 지방자치를 위해 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중요한데 지난 20년간 어느정도 달성됐다고 보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항쟁 이후 우리사회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지방의 재발견으로,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되는 등 지방화를 위한 노력이 본격화된 때문이다. 응답자 72명의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5.1점으로 낮았다. 세계화와 함께 21세기 흐름의 한 축인 지방화를 위한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감 성취도가 '반쪽'에 그친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의 중앙집중화와 수도권이 돈 물자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의 왜소화는 이제 지방민이면 누구나 생활속에서 느끼고 있다. 최근 수도권의 동태는 그 비대성을 또 한번 확인시킨다. 수도권 일대에 계획중인 신도시만도 10개 지구에 이르며, 내년 토지 보상비로 무려 20조 원이나 투입된다. 부산시의 올해 예산은 6조원 남짓. 부산시 규모의 광역단체 3곳의 한해 살림돈이 수도권 신도시, 그것도 땅 보상비로 퍼부어지는 것이다. 인구 등의 수도권 유입이 계속되고 있음을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건교부 조사에 의하면 보유세 과세 대상으로 공시가격 6억 원을 초과하는 공동주택의 99.8%가 수도권에 있다. 서울 강남 5층 건물주가 스스로 영세민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최근 한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는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경제성장 등에서 수도권의 공은 인정하나 지금은 그 비대화로 국가발전의 화근이 된 탓에 참여정부의 지방분권·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정 등 지방살리기 정책에 대해 각 지자체들은 크게 환영했다. 이에 따른 47개 분권 과제 중 33개가 완료됐고,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국세의 지방이양, 지방소비세 신설과 같은 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에 절실한 재정분권 등 비중있는 과제들은 답보 상태다. 이처럼 '분권'과 '분산'이 지방의 염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도권은 애써 외면하며 '중앙 감싸기'에 급급했다. 중앙 언론들도 부정적인 목소리만 냈지 지방살리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거의 없었다. 특히 근래들어 분권과 균형발전의 가치가 왜곡, 매몰되는 듯한 시대역행적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얼마전 한국경제학회가 '참여정부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득과 실'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는데 '포퓰리즘 정책이다' '불균형 시정과 지방자립을 위한 정책이다'는 찬반론이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수도권 학자들은 부정, 비수도권 학자들은 긍정하는 '평가의 양극화'를 보였다. 이런 기류에 편승해 지방 이전 대상인 수도권 공공기관들도 "정권 바뀌면…"하면서 미적거린다는 말도 들린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지방화 정책의 연속성과 지방살리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다. 대권주자들은 수도권 집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지방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지방은 이를 철저히 검증, 평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방민 스스로 일깨워야 할 시점이다. 대선국면에서 자칫 지방화 과제들이 흐지부지될 공산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분권정책이 중앙정부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지방이 실제 발전할 수 있는 지방의 시각에 의한 '신분권'이 필요하다. 지역특성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정부의 일률적 규제를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지자체 자율에 넘겨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