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구상한 새로운 형태의 감옥인 '파놉티콘'. '모두(pan) 본다(optic)'는 뜻을 가진 원형감옥으로, 노출되지 않은 소수의 감시자가 훨씬 많은 수의 재소자를 감시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감시와 통제'라는 파놉티콘의 기본 원리는 비록 구상 단계에 머물렀지만 이는 정보화 시대를 맞아 '정보감옥'의 형태로 발전, 디지털 기기라는 '감시자'와 함께 현실화(?)되고 있다. 이제 휴대전화는 이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폐쇄회로(CC)TV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교통카드의 현금영수증 발급이 시작되면서 카드사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카드 사용내역 조회' 시스템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던졌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들에게 현금영수증 발급과 관련, 상세한 사용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편리함을 줬지만 반면 개인의 행적 노출이라는 '내 몸속의 폐쇄회로(CC)TV'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산시가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된 뒤 곧바로 '카드사용내역 조회 시스템'을 전면 중단하도록 하고 교통카드사와 대책 마련을 논의하는 등 발빠른 조치를 취했다.
교통카드는 '기명식'이 아닌 '무기명식'이라는 점에서 카드의 분실과 양도 뒤에도 본인 확인절차 없이 카드에 기재된 번호만으로도 카드 사용자의 이용내역이 조회된다. 카드등록이 돼 있지 않은 경우 카드번호만 알면 누구든지 조회가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시스템에는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유료 터널 통행, 공영주차장 자판기 등에 이르기까지 교통카드 사용 시간이 초 단위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 때문에 카드 등록을 위해 교통카드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한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 '친절한' 시스템이었지만 악용될 경우 디지털 시대에 또 하나의 '파놉티콘'이라는 오명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교통카드 사용내역 조회 프로그램은 신속·편리라는 장점과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단점의 양면성이 항상 공존하는 디지털 시대의 명암을 고스란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