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로 뛰었던 10년 전 일이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위치한 A화랑이 거듭된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화랑은 개인 영리만 좇지 않고 힘겨운 지역 예술인을 포옹해 주는 문화 사랑방 역할을 감당해 왔기에 폐업해야 한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화가 입장에서 보면 괜찮은 전시 공간 하나가 줄어드는 셈이고 미술 담당기자 입장에선 쓸 만한 출입처(?) 한 곳이 없어지는 판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해서, 화랑 대표를 만나 위로를 건넸다. "화랑 운영을 관두셔야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 힘드시죠?" "웬걸요. 배 곯는 데 하도 이골이 나서…. 대안을 못 만드는 제가 못난이죠."
배고픔에 익숙하다는 그 말이 참 안쓰럽게 들렸고,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지역 문화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문화(인)는 배고프다'. 그 후 접한 미술 음악 춤 연극 문학, 다양한 지역문화 현장에서 이 말을 떠올릴 때가 많았다. 자생력을 가진 극소수의 문화 현장이나 잘 나가는 예술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외부 도움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얘기는 다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자에 허덕이던 A화랑은 결국 문을 닫았다. 화랑을 인수한 새 주인은 지금껏 재개관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A화랑대표는 기업 메세나, 지자체의 지원 같은 대안을 모색했지만 허사였다. 개인 화랑이라 공공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 그렇지 않았더라면 A화랑은 살아남았을 텐테,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았다. 동시에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역 공공 문화시설과 담당 인력의 역할이 정말 제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산할 위험이 거의 없는 부산시·군·구의 문화시설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요람 같은 곳이다. 작품 발표 공간을 제공해 창작 의욕을 북돋운다. 시민 입장에서 보면, 이곳은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예술 체험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시민들은 세금을 낸 만큼 지역 공공 문화시설들은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 지역 문화시장의 기본 법칙은 잘 지켜지고 있으며, 부산 문화는 시대 변화에 걸맞게 적응해 가고 있을까. 시·군·구의 문화시설의 운영 행태를 살펴보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힌다. 우선, 부산시립미술관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이 미술관은 개관 10돌을 맞아 '부산미술 80년, 부산의 작가들'이란 제목으로 기념전을 열고 있다. 440여 작가의 460여 점이 출품됐는데 이를 두고 평단에서는 수준이하의 전시라고 질타했다. 동감한다. 전시 벽면에 다양한 크기의 회화들을 얼마나 오밀조밀하게 붙여 놓았는지 그 솜씨에 감탄할 지경이었다. 전시 기획자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핵심단어를 잊어버렸는지,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한마디로 관람객을 무례하게 대하는 전시다. 기획전을 구성할 때 기본인, 주제를 정해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는 방식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을까. 아니면 결정에 대해 책임지기가 싫어서 그랬는지 전말을 규명해야 할 것 같다. 개관 10돌을 기념하는 중요한 전시회인지라, 기획입안부터 최종 확정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문제점이 없는지 거르고 검증해보는 과정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결과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몰랐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알고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면 큰 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큰 작업이란 부산시 차원에서 전반적인 부산 문화의 역량을 재점검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갈 대안과 전문 연구 인력을 새로 만들고, 지역 현실에 맞는 경쟁력을 키워 문화의 세기를 준비하는 걸 말한다. 범위를 좁혀 말하면, 지역 공공 문화시설들도 한해 농사에 대해 평가·책임을 지는 신상필벌 체제를 도입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공익성이 강한 개인적 활동의 총체다. 개인 역량에 기업이나 지자체의 지원이 더해질 때 지역 문화는 꽃을 피운다. 이런 지자체나 기업의 역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까먹거나 모르는 체해서야 되겠는가. 최근 부산 문화 여건은 경기도 부천·거제· 김해시와 같은 다른 지자체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문화의 세기라는데, 정말 위기감이 든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