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그지없이 좋아할 뿐이다.
흔들리는 시내버스라고 하더라도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거기에 앉아서 지치지 않고 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지하철을 싫어하는 것도 오직 한 가지 이유다. 차창으로 풍경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고작 차창 풍경에 목을 매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지난 주말에는 광양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 산등성이에는 매화나무들이 꽃을 한껏 피우고 있었고 그래서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봄 산은 마치 새하얀 면사포를 뒤집어 쓴 신부처럼 조신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정경도 잠시뿐, 매화마을 초입은 벌써 전국에서 몰려든 상춘객들 때문에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한 마을에서는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축제판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먹을거리 가게 천막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누가 그랬다. 이런 봄날 사람 붐비는 꽃놀이보다는 한적한 시골길을 느릿느릿 달리면서 복숭아꽃 피는 마을을 차창으로 바라보는 편이 훨씬 더 좋다고. 그 말을 좆아 느릿하게 차를 움직여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돌아왔다. 잠시 멈추어선 차창으로 농가 담장 곁에 한 그루 매화가 마치 흰 모시 수건을 쓴 시골 아낙처럼 다소곳이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품격 있는 인경(人境)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온 산을 멀미를 일으킬 정도로 뒤덮고 있는 꽃보다는 차안에서 본 마을풍경이 더 인상적이었다.
고속국도와 고속철도가 정비되면서 이렇게 느릿하게 차창 풍경을 감상하는 풍류도 옛일이 되어 버린 듯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명산의 명풍경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만의 풍경을 골라낼 수 있다.
KTX 차창에서도 이런 풍경을 나는 몇 개 가지고 있다. 서울로 향하는 열차가 구포역을 지나 어지러운 도시 풍경 속을 단숨에 빠져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왼쪽 편 차창으로 멀리까지 벌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아래에는 태연하게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강 저쪽으로 매리 취수장이 보이고 나서다. 장강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낙동강 하류 너른 물길 저 너머에서 한 줄기 산자락이 물가로 다가오는 광경이 보인다. 용이 물로 입수하고 있는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장소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든, 신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풍경이다.
또 하나 더 있다. 원동역을 지나 삼량진으로 다가설 때다. 산자락을 휘감아 돌던 강줄기가 갑자기 넓어지면서 강바닥 여기저기에 작은 모래섬들이 둥둥 떠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물새가 그 섬 위 갈대숲에서 푸드덕 날아오르고 푸른 하늘에 뜬 흰 구름이 강물 위에 비치는 풍경이다. 눈을 끄는 곳이라고는 어느 한 군데도 없는 그저 그런 강 풍경이지만 나는 이 풍경이 좋다.
매일 타고 다니는 시내버스에서도 나만의 명풍경을 가지고 있다.
엄궁동에서 사하구 하단으로 넘어가는 산모롱이에서 보는 낙동강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녹산과 불모산이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그 산기슭에 기대어 자리 잡고 있는 명지마을과 장유 신도시가 평야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풍경이다. 봄날 아침이면 안개 자욱한 벌판 저 멀리 섬처럼 산들이 둥둥 떠 있는 몽환적인 풍경을 차창으로 바라보는 눈맛은 해산기승의 풍경과는 또 다른 일미다. 이런 풍경이 차창으로 보일 때면 복권이라도 당첨되었을 때처럼 횡재를 한 느낌이다.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의 절승이 여기저기에 쉽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풍경의 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풍경,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아니 이렇다 할 곳이 없이 보이는 풍경이야말로 가경(佳境)이라고. 그러니 이 범상한 풍경들 속에서 진품을 가려내라고. 하지만 풍경의 눈맛을 아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골동품을 고르는 눈썰미가 있다고 한다면 풍경의 명품을 감별하는 눈 또한 있을 것이다.
만약 그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풍경의 명품을 쉽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매일 아침 몸을 기대는 차창은 풍경의 눈맛을 만끽하는 특등석이 되는 셈이다.
동아대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