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뭡니까?
"과격하게 비유하면 조폭이라 할 수 있어요."
-네?
"그렇죠. 자릿세(세금) 받아 뒷배 봐주잖아요. 안전 보장을 명목으로 세금(자릿세)을 거둬 들이고는 '내 말 들어라' 하죠. 국가가 그래요. 조폭의 생리를 닮았죠. 지방이 함부로 까불 수 없죠."
최근 본지가 연재한 '도시국가-부산' 시리즈를 놓고 지역의 L교수와 나눈 대화다. 비유가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수긍가는 면이 있다. 핵심은 세금이었고, 누가 과세권을 갖느냐였다.
'도시국가론'은 부산의 현실과 수도권 블랙홀 현상, 지방분권, 지역 경제와 인재, 네트워크 시대의 도시 경쟁력, 지역의 꿈과 비전 등 여러 층위의 얘기들을 주렁주렁 달아냈다. 얘기는 급기야 '서울공화국 대 부산 도시국가'까지 번졌다. 이 대목에서 L교수는 무릎을 탁 쳤다. "그겁니다. 그런 구도라면 샅바 싸움이 돼요. 분권, 분산, 균형발전론의 한계를 뛰어넘는 얘기가 되거든요." 국제정치를 전공한 L교수는 조폭(국가)의 철벽을 뚫으려면 지역연대라는 초강력 드릴이 필요하다면서, 도시국가론은 그런 측면에서 신나는 상상력이라고 평했다.
혁신도시 논란이 말해주듯, 한국사회의 수도권·비수도권 문제는 합의 도출이 안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 맞물려 분산·균형발전의 가치가 하루 아침에 후퇴할 조짐이다. 지방은 '이럴 수 있나' 하고, 수도권은 '그럴 수 있다' 한다. 수도권의 욕심과 욕망을 늦출 수 없다면, 지방도 야심과 야망을 가져야 할 터. 그러한 논의의 물꼬를 트는 시도가 도시국가론이다.
온건하게 보면 '도시국가-부산'은 그렇게 파격적인 발상이 아니다. 교통, 물류, 인구 규모, 산업 집적도, 문화 관광 자산 등을 볼 때 부산은 이미 '도시국가'처럼 발전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못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부산만의 도시국가 추진이 무리라고 본다면, 새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창조적 광역 발전구상(5+2광역경제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수도권 규제를 풀기 위한 '광역 장치' 쯤으로 평가절하하지만 ▷광역사업의 연계 및 인프라 구축 ▷규제 개혁 ▷분권과 통합 등은 전략적 활용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릇이 아니라 내용이다. 내용도 뜬구름 잡는 식이 아닌, 확실한 변화의 모멘텀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지방이 요구해야 할 것은 자명해진다. '광역경제권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 성공시켜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성공의 열쇠는 광역경제권이란 그릇에 도시국가(국제자유도시) 전략을 담는 것이다. 각 광역권을 자치 분권형으로 만들어 4무(무비자·무규제·무관세·무언어장벽)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하는 구조다. '광역분권형 국가'야말로 성공한 광역경제권의 그림일 것이다. 이를 뺀 논의는 시늉이요 겉치레일 수밖에 없다.
때마침, 일본의 도주제(道州制) 주창자가 한국에 왔다. 에구치 가쓰히코(江口克彦) 일본 내각부 도주제 비전위원장이다. 도주제는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을 10개 안팎의 도(道)와 주(州)로 재정비하는 방안으로, 사실상의 연방제 전환을 뜻한다. 6일 서울에서 열린 '21세기 광역분권형 국가운영' 세미나에서 에구치 위원장은 "일본의 중앙집권체제는 한계에 달했다. 광역분권형 체제가 중앙정부와 지방을 함께 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구치 위원장이 10여년 전 쓴 '지역주권론'을 다시 봤더니 시사점과 메시지가 여전히 강했다. '…일본은 위기다. 종적 피라미드 국가 구조를 횡적 선정(善政) 경쟁 체제로 바꾸자. 지방교부금, 보조금은 악의 근원이다. 11개의 연방주에 과세자주권과 징세권을 부여하라. 오사카가 총대를 메고 간사이주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그때 당긴 불씨가 도주제 논의로 타오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변화는 바다 건너 남의 일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처럼 수도권·비수도권 논란만 거듭할 텐가. 도시국가든, 준연방제든 지역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대안과 비전을 놓고 토론하자. 국가라는 '조폭'이 무서워 못할 얘기는 더 이상 없다.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떤가. '부산(동남권)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라고. 희망의 출발선은 냉철한 현실 인식이며, 비상구는 상상력이다. 시민들의 가슴마다에 상상력의 지도를 하나씩 품고 세계를 보면 부산이 건너지 못할 바다는 없다.
기획탐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