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에 상처를 입은 '민심'들이 촛불을 들고 하나 둘씩 광장에 모여들어 긴 불띠를 이루었을 때, '김수영(1921~1968) 시인이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묻고 싶었다. '이 촛불의 의미는 무엇인가요?'라고. 1960년 40세 나이로 4·19 혁명을 목도하고는 폭포같이 시를 쏟아냄으로써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나눴던 그가 이 촛불문화제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김 시인의 40주기인 지난 16일, 책장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김수영 전집 1,2(민음사)'를 꺼냈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풀' 전문)
촛불문화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김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전집 1권(시) 맨 뒤쪽에 실린 그의 대표시 '풀'(현역시인 100인이 추천한 애송시 1위이기도 하다)에 이르자 가슴이 스르르 더워졌다. 그렇다. '풀'이 씌어진 1968년에도 그랬고 40년이 지난 2008년도 마찬가지다. 민초(民草)란 말대로 민중은 풀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풀은 눕는다. 더 이상 저항할 기력이 없다는 듯이. 그러나 그 풀은 다시 일어선다. 풀이 넘어진다는 건 일어선다는 걸 의미한다. 풀은 민심이고 의지이다. 그렇게 들고 일어서는 풀들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풀'을 거듭 읽으면서 '촛불문화제는 풀들의 촛불 잔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꺼지기 쉬운 촛불을 든 것은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가물거리는 촛불을 들고 싸우는 사람을 보았는가. 촛불을 켠 것은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는 데 서로 힘을 합치자는 신호였다. 정부가 민심을 몰라주니 답답해하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촛불 들고 광장에 모인 게 촛불문화제였다. 그런 촛불 민심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군홧발로 여대생을 짓밟기도 했고 물대포도 쏘았다. 소통을 원하는 시민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박아 놓았다.
정부는 촛불문화제에 대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처했고, 촛불의 온도가 생각보다 뜨겁다고 뒤늦게 깨닫자 민심 수습책을 부랴부랴 내놨다. 그게 또 우는 아이 사탕 주는 식이어서 '풀'들을 뿔나게 했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자 정부는 그것을 집회냐 문화행사냐, 그 해석을 놓고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일부에서는 이에 편승해 반정부 세력이 시위를 획책한다고 비난했다. 전국 거리에서 촛불행렬이 서서히 늘어갈 즈음 정부는 '아직까지는'이라고 자위하는 듯 보였다. 거리에 촛불을 들고 나선 이들의 숫자에 혹해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다. 이미 그때 마음속으로 촛불을 잡은 사람, 촛불 행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다는 얘기다. 불과 수일 후, 그들이 거리로 몰려와 서울시청 앞 광장과 서면 일대를 가득 메웠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주부까지 합세했다. 그때서야 정부는 촛불의 뜨거움을 알고 '진화'에 들어갔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 일괄 사의 표명, 청와대 인사 쇄신, 7조 원 규모의 세금 환급(고유가 대책이라니!), 생활이 어려운 계층 휴대전화 요금 감면…. 임기응변식이고 즉흥적인 수습책 아니었던가. 세금 환급의 경우 불필요한 세금을 징수했기에 돌려준다는 것인지, 정당하게 걷었지만 서민생활이 어려우니 보태준다는 뜻인지, 또 그런 식으로 세금을 풀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정부처방이 이번 사태를 치유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촛불문화제는 위정자들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자 '풀'들이 스스로 나서 치유책을 모색한 시민운동으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시민보다 앞날을 더 내다보지 못하고, '풀'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지 못하는 무심한 정치가들 천지였다는 설명도 뒤따를 테고. 촛불을 든 이는 이렇게 묘사되지 않을까.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몸짓을 갈구했으며, 그걸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눕겠다고 했다. 풀처럼'.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