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몇 바가지 흘렀을 것이다. 걷고 또 걷는 강길. 땀범벅으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제방 너머에서 강바람이 찾아와 땀을 닦아 주었다. 기꺼이, 즐겁게 걷기로 마음을 먹자 뙤약볕도 땀도 도반(道伴·길동무)이 되었다. 강길 중에서도 최고는 제방길이었다. 적당한 상승감과 확 트인 시야는 제방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선물이었다.
'2008 낙동강 도보순례 대장정'('강살리기 네트워크'등 주최) 9일째를 맞던 지난 23일, 경남 창녕군 남지에서 순례단을 만났다. 위로하러 갔다가 위로받고 돌아왔다. 일행은 30여 명이었다. 서울에서, 섬진강변에서, 태백에서 걷기를 자청한 사람들이다. 모두 구릿빛 얼굴이었다. 몇은 수염이 더부룩했다. 이글거리는 눈빛 속에 벌써 강이 하나씩 흐르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고 젖고 말리기를 반복하다 지쳐 돌아온 저녁에 이들은 제방제(堤防祭)를 올렸다. 편육 몇 점과 막걸리 한 됫박이 제상으로 차려졌다. 누가 알기나 할까, 이날의 제방제를(하긴 제방제가 있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제방의 신이시여, 우리들 탐욕을 꾸짖어소서. 우리들 이기심을 나무라시고 무지를 책하소서. 그리하여 자연의 노여움을 거두게 하시고 제방을 굳건하게 지키게 하소서. 평화의 제방이 되게 하소서…."
남지 둔치의 강변은 저녁에도 쩔쩔 끓었다. 산천초목이 숨죽인 채 낯선 제방제를 물끄러미 구경했다. 20여 분간의 짧은 제방제가 끝나자 강쪽에서 가냘픈 바람이 불어왔고, 참가자들은 노래를 불렀다. 왜 제방제를 하는가. 제방의 뜻을 새겨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목마른 강물을 달래는 제의라고 한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강의 눈으로 물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강물도 목이 마르다'. 가두려는 인간의 욕망이 강을 목마르게 한다. 이 역설은, 산업문명의 이면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산업사회의 인간들은 개발 이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홍수는 늘어나고 제방은 성채처럼 날로 높아간다. 20세기의 강은 제방사라 할 정도로 실로 많은 제방이 건설됐다. 오늘날 강변 농경지 대부분은 실제로 제방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연 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제방들은 보릿자루처럼 툭툭 터졌다. 인간이 조급하게 접근할수록 제방은 허술함을 노출했고, 홍수는 그 틈을 가차없이 공격했다. 제방 붕괴에 따른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 전국에서 270명이 숨졌고, 2003년 매미는 14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산 피해액이 수조 원에 달했고 복구 비용은 피해액의 배를 웃돌았다. 2002년 8월 낙동강 제방 붕괴로 흙탕물 바다로 변했던 김해시 한림면 주민들의 절규는 지워지지 않을 제방 수난사가 아닐 수 없다.
제방은 이처럼 철저히 두 얼굴을 한다. 마법처럼 농경지를 낳고는 악마처럼 모든 것을 쓸어간다. 아무리 쌓고 높여도 인간들은 불안하다. 무엇이 뒤틀린 것일까. 23일 제방제를 열면서 낙동강공동체 김상화 대표는 나직이 말했다. "인간의 교만이 문제지요. 제방을 높인다고 강이 고분고분해집니까. 더 사나워져요. 물이 흐를 공간을 더 내줘야 합니다." 그의 말은 대운하를 반대하던 정연한 논리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도보순례를 주최한 '강살리기 네트워크' 측이 내건 올해 슬로건도 '홍수와 더불어'란다. 홍수 이길 장사는 없다는 말이겠다.
도보순례단은 창원시 동읍 본포나루에서 또 하나의 '상실'을 목도한다. 가까스로 버티던 나루터 주막(찻집)이 제방공사로 끝내 헐린다는 소식이다. 뜻있는 인사들이 그토록 보존을 바라던 '문화재급' 주막이 헐린다니. 그동안의 보존운동이 허망하다. 주막이 단봇짐을 싸고 나면 콘크리트 제방이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제방과의 싸움에서 문화가 두 손 든 꼴이다. 슬프다. 경북 예천땅 삼강주막의 옛 주모 유옥연 씨가 죽기 전 되뇌던 말이 떠오른다. "제방 놓인 뒤로 너무 답답해. 강이 보이나, 물이 보이나, 사람이 보이나. 경치 배럿어."
그래도, 제방을 높여야 할 것인가. 제방을 부여잡고 묻고 싶을 따름이다.
기획탐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