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면서 나는 공영방송 KBS와 다른 방송국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방송이 금메달 유력 종목과 인기가 있는 종목에 편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청률 지상주의이다. 시청률이 낮은 종목은 소개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금메달을 딴 장면은 틀고 또 튼다. 말로는 올림픽이 참가에 의의가 있다고 번지르르하게 말하지만 카메라와 방송시간은 철저히 시청률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좋다. 한국은 시장경제를 택하고 있으므로 자본에 의해 방송이 움직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자.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광고 수입이 크고 광고 수입이 많아야 방송사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시청률에 목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업주의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 공영방송 제도이다. 즉 광고수입 대신에 시청료로 운영을 하되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의미가 있으면서 사회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뭐하러 국민이 세금처럼 시청료를 내겠는가. 따라서 공영방송은 상업방송과 근본부터 달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공영방송은 전혀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공영방송이라면 올림픽 방송에서 소외 종목부터 챙겼어야 했다. 시청률이 높은 종목이야 상업방송이 하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방송할 터이니 애초부터 신경 쓸 것 없다. 공영방송은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를 오랜 시간을 두고 취재했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다. 동네에서 테니스 좀 친다는 말을 들어도 구 대회에 나가면 별 볼일이 없고 구 대회에서 우승해도 전국대회에 나가면 어린아이다. 그러니 국가대표가 되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그런데 올림픽이라니! 비록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도 올림픽 출전은 국가를 대표하는 행위이므로 공영방송은 당연히 관심을 갖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국가대표 선수를 얼마나 푸대접했는가는 테니스 이형택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형택은 십수 년간 국가대표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방송을 탈 수 없었다. 메달을 딸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기에 이형택의 게임은 중계되지 않았다. 1회전 탈락했지만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형택의 마지막 올림픽 출전일 것인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형택 정도면 이름 있는 선수이다. 이름 있는 선수가 이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으니 다른 종목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고 종목이 확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예선 일정도 나와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영방송이 마음만 먹는다면 4년 동안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어떻게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되는가를 취재하기에 충분한 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 서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보여줄 수 있고 또한 그들의 땀을 국가와 국민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4년이란 시간을 두고 취재를 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성적에서 오는 환희가 아닌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좌절에서 오는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채널에서는 축구를 중계하고 있지만 공영방송에서는 요트를 중계한다면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분하게 준비한 자료들과 함께 소외 종목을 내보낸다면 성적 지상주의, 시청률 지상주의의 폐해를 소리 없이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의도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공영방송에서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기본적인 자세는 아닌 것이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어울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공영방송은 시간 날 때마다 외친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상업방송과 전혀 다르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상업방송과 구별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시청료 인상을 주장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겠다고 하면 누가 인정해줄 것인가.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었다면 시청자들이 먼저 독립성을 지켜줄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왜 바꾸려 하는가. 이런 분위기라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공영방송 사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방송은 방송사 밖에서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으로 말하고, 프로그램으로 심판받는 것이다.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