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이제 40여 일. 여기서는 차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어 오자마자 나도 중고차부터 한 대 장만했다. 초보 정착자들에게는 길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필수품목. 더구나 나 같은 '길치'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것이어서 나는 내비게이션이 내장된 차를 구했다.
문제는 그것이 5년 묵은 구닥다리였다는 것. 딜러가 미리 알려줬지만, '그 사이 길이 새로 생겼으면 얼마나 생겼을라고' 싶었는데, 이놈을 믿고 운전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도 안 통하는 미국 땅에서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가까운 곳도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인터넷의 구글맵이나 맵퀘스트 같은 지도사이트에서 예상코스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다 늙어 보이스카우트놀이를 하게 될 줄이야. 전자제품이든 뭐든 새 모델이 나왔다 싶으면 남보다 먼저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얼리어댑터'들이 나를 보면 어이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 정착에 예산보다 많은 돈을 써, 한 개 수십만 원 하는 새 제품을 선뜻 구입하기도 어렵지만, 가끔은 이 낡은 내비게이션 덕에 뜻밖의 일들을 경험하게 되어 나는 아직도 새 것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디시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목적지는 스미스소니언의 국립박물관들이 밀집해 있는 내셔널 몰. 이곳이 이른바 워싱턴관광 일번지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려면 거리와 번지수를 정확히 입력해야 하는데, 박물관의 주소를 몰라 대충 써넣고 먼 길을 나섰다. 외곽의 고속도로에서 워싱턴 도심으로 진입하는 순간 시야를 가득 메워오는 대도시의 위용. 수많은 차들과 크고 웅장한 건물을 보면서 나와 우리 식구들은 '역시', '과연'을 연발하며 긴 여정의 피로를 잠시 잊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턴 레프트(왼쪽으로 돌아라)' '턴 라이트(오른쪽으로 돌아라)' 하는 사이, 우리 차는 점점 뒷골목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리 앞에는 조금 전 그 대도시의 위용 대신 낡고 초라한 벽돌집과 좁고 지저분한 골목들이 펼쳐지고, 그 사이를 추레한 흑인들이 폭염에 지친 표정으로 오가고 있었다. 한국의 60, 70년대 도시변두리를 연상하게 만드는 거리. 아, 이건 아니야, 우리가 가려던 곳은 이런 곳이 아니야. 내비게이션, 너 또 우리를 잘못 인도했구나. 우리의 목적지는 크고 웅장한 국립박물관들, 국회의사당, 워싱턴 기념탑, 백악관이 줄지어 늘어서서 미국의 위대함과 규모, 그들의 능력과 영향력의 크기를 증명해주는 그곳, 내셔널 몰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 식구들의 실망과 당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비게이션은 어느 작고 초라해 보이는 건물 앞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데스티네이션(목적지)!'
이렇게 작고 옹색한 건물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일 리가 없다. 서둘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 계속 머물면 마치 금방이라도 흑인 강도들이 덤벼들 것만 같고, 불량청소년들이 우리 차를 해코지할 것만 같아 허겁지겁 차를 몰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나와 식구들은 미국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그것도 흑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할리우드의 허접한 영화들을.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내셔널 몰에 도착했고, 하루 이틀에 다 둘러보기는 불가능한, 그 유명한 국립박물관들의 일부를 마침내 구경했다. 공원을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뛰는 사람들, 함께 박물관 관람에 나선 단란한 가족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로 내셔널 몰의 오후는 평화로운 활기로 넘쳤다. 운전과 구경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차가 있는 쪽으로 가니, 한 흑인노숙자가 벤치에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저려왔다. 그의 눈길은 꼭 '나는 너희가 아까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흑인거주지를 도망치듯 황망히 빠져나왔던 아까의 우리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이끈 곳은 틀림없는 박물관이었다. 그것도, '미국흑인 역사문화박물관'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화려하고 웅장한 워싱턴의 이면과 속살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내셔널 몰의 위용과 뒷골목의 남루를 함께 봐야 미국의 진면목을 알게 되리라는 무언의 암시였을까.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나는 오래 돼 믿을 수 없는 이 길안내 장치를, 그래서 애지중지 여기며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다음에는 나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