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샤워실의 바보'란 용어가 있다. 수도꼭지를 틀어 뜨거운(찬) 물이 나오면 급하게 반대로 돌리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만든 용어로 냉온탕을 오가는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또 역(逆)피그말리온효과란 심리학 용어도 있다. 진심으로 희망하면 이뤄진다는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이며, 반대로 나빠질 것이라고 믿고 행동하면 더 나빠진다는 게 역피그말리온 효과다.
갑자기 두 용어를 언급한 것은 이른바 '9월 위기설'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이들 용어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경제팀은 고성장을 위해 초기부터 고환율 정책을 폈다. 수출드라이브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강 장관이 취임한 2월 29일부터 3월 17일까지 18일 동안 원·달러 환율이 90원이나 뛰었다. 수출업체엔 도움이 됐겠지만 물가상승을 유발, 시민생활에 고통으로 다가왔다.
고물가 속에 경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여론이 나빠지자 5월 중순께부터 정책을 바꿨다. 적극 환율에 개입하면서 환율내리기에 나선 것이다. 강력한 시장개입으로 지난 7월 한 달간 외환보유고가 100억 달러 이상 줄었다.
냉온탕 정책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다. 문제는 정부가 냉온탕식 경제정책을 집행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9월 위기설이란 것이 별게 아니다. 단순히 얘기하면 단기부채 84억 달러의 만기가 9월에 집중돼 금융위기를 맞게된다는 게 골자다. 이로 인해 환율·금리가 폭등하고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져 금융기관들이 연쇄부실 사태에 직면할 것이란 시나리오다. 지난 봄부터 이런 얘기가 흘러나왔다. 지금은 단기부채가 67억 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 경제규모로 볼 때 감당 못할 수준이 아니어서 '괴담'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막상 9월에 들어서자마자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제서야 정부는 9월 위기설은 근거가 없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9월 위기설에다 허리케인 등 해외발 악재까지 겹치자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이 4246억 원을 순매도해 외국인 순매도액 2509억 원을 크게 상회했다. 냉온탕 정책에 실망한 투자자들의 행동이 역피그말리온 효과의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시장이 요동친 모습을 들여다보자. 9월 1일의 경우 허리케인으로 인한 유가급등 우려, 미국 증시 급락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2일엔 두산 동양 금호 등 국내기업들의 유동성 위기 문제도 악재에 가세했다. 이틀간 코스피지수가 67포인트나 빠졌다. 환율은 지난 주말부터 3일까지 4거래일 동안 67원이 뛰었다. 9월 위기설로 인한 심리적 패닉현상도 적지 않게 가세했음이 분명하다.
강만수 장관 등 경제관료들은 연일 금융위기는 없다며 대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도 97년 IMF 때와 같은 금융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국민들도 대부분 우리 경제가 그런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역피그말리온 효과다. 즉 고물가에다 경기부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들의 심리적인 공황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민들은 새 정부 들어 미국산 쇠고기 사태에 이어 경제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불신을 쌓아왔다. 지난 7월 개각 때도 대대적인 개편 여론에도 불구, 소폭 개각에 그친 바 있다. 바뀔줄 알았던 강만수 장관도 유임됐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것은 환율을 낮추기 위해 외환을 투입하거나 주가 방어를 위해 연기금을 동원하는 식의 대증요법이 아니다. 어차피 인위적인 조정은 한계가 있다. 신뢰가 떨어진 마당이어서 냉소만 흐를 뿐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되살릴 수 있는 진심어린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