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山色이 아름다운 까닭은? /정찬주

정복하려는 인간과 달리 여러 생명과 공생하는 산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09-12 19:17:5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산중에서 살다 보니 주로 산촌의 농부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다. 정해진 자리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다가다 마주치면 그 순간에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으며 각자 일하는 곳으로 돌아가곤 한다.

산중 생활에 서툰 내가 주로 묻고 농부들이 답을 한다. 농부들의 답을 들어 보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엿보인다. 쌍봉다원의 고 씨 부부는 차나무에 절대로 농약을 치지 않는다. 자벌레가 찻잎을 갉아먹지만 내버려둔다. 찻잎의 3분의 1은 자벌레 몫이고 나머지는 그들 부부 몫이라고 한다. 욕심을 내지 않으면 미물과 공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 부부의 주장이다. 게다가 자벌레는 어느 시점에 이르면 육식하는 벌에 의해 개체수가 불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씨는 밭농사 작물의 씨를 뿌릴 때 늘 넉넉하게 파종한다고 한다. 산비둘기나 꿩들이 쪼아 먹을 것을 감안해서 그런다고 했다. 이제는 나도 산새들 먹이까지 계산해서 씨를 많이 뿌리게 됐다. 조금 더 수확하겠다고 치사하게 씨앗에 약을 바르거나 비닐을 덮지 않는다. 산새들의 춘궁기가 길어진 탓에 참깨 씨를 세 번이나 뿌리는 수고를 했지만.

산중의 농부들은 불교의 연기(緣起)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연 속의 생명들과 공생할 줄 안다. 내가 사는 산중에도 한 영악한 농부가 쌀 수확을 늘리기 위해 독성이 강한 농약을 자기 논에만 몰래 사용하다가 가족 전체가 처음에는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 신세를 오랫동안 졌다고 한다. 욕심을 과하게 부리다가 병원으로 간 사례다.

나에게 김장고추를 판 오 씨는 해마다 고추농사로 수입을 많이 올리는 농부인데, 올해는 300근만 수확하고 말았다고 말한다. 고추가 익을 무렵에 살충제를 두어 번 뿌렸으면 배 이상은 땄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내 산방으로 찾아온 오 씨에게 나는 발효차를 우려주면서 위로했다. 지금은 잃은 것 같지만 살다보면 그 선한 마음으로 인해 얻을 복이 많을 것이라고. 불가의 문법으로 표현하자면 선인선과(善因善果)인 것이다. 이곳은 대부분 계단식 다랑이 논이다. 논두렁이 자연을 닮아 곡선이다. 그 곡선을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논두렁 옆으로 걷다 보면 여물어가는 벼가 말할 수 없이 향기롭다. 솥에서 밥이 되어가는 향기와도 같다. 입안에 침이 고이고 살맛이 나게 한다.

욕심만 조금 줄인다면 마음만은 이 산중이 바로 극락이다. 조주 선사의 오도송이 저절로 읊조려지는 산중의 가을이다.

봄에는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이 밝다/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린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좋은 시절이라네.

문제는 조주 선사의 경책처럼 인간의 쓸데없는 생각이나 욕심이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번뇌 망상이다. 산을 아는 사람은 산이 왜 아름다운지 안다. 산은 우리가 아는 소나무나 잣나무 몇 그루 때문에 수려한 것이 아니라 수만 가지의 풀과 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색(山色)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산중생활에 제법 익숙해지면서 자연으로부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어렵게 얻은 지혜가 아니다. 날마다 마주치는 마당가의 연못에서 보았다. 산중이라 찬물에도 잘 사는 수련을 몇 해 전에 심었는데, 올해는 탐스런 꽃을 보지 못했다. 수련이 왕성하게 번식하여 연못을 뒤덮더니 잎들이 작아졌고 꽃도 피는 둥 마는 둥했다. 연약한 개연 종류는 자취를 감추고 없다.

자연의 섭리는 공생이지 결코 한 생명의 독주나 정복이 아니다. 정복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인간의 습성일 터이다. 최근에 어떤 목사가 자신들끼리 한 얘기라고 항변하지만 '불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우기는 것을 보면 몹시 안타깝다. 언행이란 어느 장소에서나 같아야 하는 법이다. 어느 지자체 장이 기독교 성시화를 위해 시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둥, 일부 기독교 목사와 신자들이 법당이 무너지라고 기도하더니 마침내 전도 차원을 넘어 한 종교의 뿌리를 부정하는 데까지 다다른 느낌이다. 배려 없는 인간의 독식 근성이자 저열한 욕망이 아닐 수 없다. 그 수준이 형편무인지경이라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만 티끌 하나를 더 얹고 만 것 같다.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3. 3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4. 4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5. 5“헉! 문자 잘못 보냈다”…이제 발송 취소돼요
  6. 6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7. 7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8. 8부산도 택배갑질 터질라…신축아파트 주차장 높이 갈등
  9. 9박형준 시장, 산학협력·대기업 유치 등 경제 활성화 올인
  10. 10경남자치경찰위 출범…위원장에 김현태 전 창원대 총장
  1. 1홍준표 복당 선언에…국힘 PK 초선들 찬반 팽팽
  2. 2취임 4주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33.9%
  3. 3국힘 당권 레이스, 불 붙은 혁신경쟁
  4. 4문재인 대통령 "흠결 무안주기식 청문회" 장관후보 3인 임명강행 의지
  5. 5부산 여야정 상생협의체 구축 합의…초당적 협치 가속화
  6. 6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사면, 국민공감대 고려해 판단”…지역은 또 패싱
  7. 7부산부동산특위서 빠진 공무원 “박형준 의도적 교체” 공개 반발
  8. 8이한동 전 총리 별세…여야 조문 행렬
  9. 9영남 잠룡들 기지개…대선 판 움직일까
  10. 10문재인 대통령 10일 특별연설…코로나 경제 청사진 언급 전망
  1. 1오거돈 임명 6대 공기업 수장 중 첫 사의…남은 5인 거취 촉각
  2. 2신항 물동량 장기계약…새 부두 일감 비상
  3. 3“헉! 문자 잘못 보냈다”…이제 발송 취소돼요
  4. 4오리엔트조선 인수 우선협상자에 우성마린엔지니어링
  5. 5LH 임직원들, 경남혁신도시서 690억 시세차익 챙겼다
  6. 6[경제 포커스] 남부발전 20년만의 캐릭터, 부산대 학생이 선물
  7. 7공정위 ‘해운사 가격담합’ 제재 착수
  8. 8말 바꾼 해수부, 북항 감사 이번주에도 계속 진행
  9. 9BPA, 항만공기업 첫 ESG 경영 추진
  10. 10부산시 소상공인 제품 디자인 ‘업’…O2O 장벽 허문다
  1. 1강서·기장 인구 늘어 ‘행복한 고민’
  2. 2내달 예정됐던 사송신도시 준공, 2023년 12월로 연기
  3. 3부산 확진자 한달 새 절반 ‘뚝’…평일 점심 5인 이상 허용되나
  4. 4AZ 기피 늘어도…‘노쇼백신’ 일부 병원 대기자만 100명
  5. 5부산도 택배갑질 터질라…신축아파트 주차장 높이 갈등
  6. 6박형준 시장, 산학협력·대기업 유치 등 경제 활성화 올인
  7. 7경남자치경찰위 출범…위원장에 김현태 전 창원대 총장
  8. 8공유 킥보드는 안전모 단속, 공유 전기자전거는 괜찮다?
  9. 9김해시, 30년 넘은 ‘노포 맛집’ 지원 팔 걷었다
  10. 10[뉴스 분석] 해상풍력 전제 조건 된 ‘주민 수용성’(혐오시설에 대한 정서)…명확한 잣대가 없다
  1. 1“최강은 나야 나”…‘고교 월드컵’ 16일 개막
  2. 2절치부심한 거인, SSG ‘쓱’ 누른다
  3. 3류현진 13일 ‘투타 활약’ 기대하시라
  4. 4‘약속의 땅’서 부활한 매킬로이…18개월 만에 정상
  5. 5선두와 막상막하…봄잠 깬 거인 달라졌네
  6. 6손흥민 EPL 17호 골 맛…전설 ‘차붐’과 어깨
  7. 7코로나가 앗아간 레슬링 올림픽 출전권
  8. 8아이파크 월요일 야간경기 기대되네
  9. 9부산 아이파크, 안방서 대전 하나시티즌에 4-1 완승
  10. 10조상현, 남자농구 국대 새 사령탑
우리은행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조해진
국민의힘 대표 후보 인터뷰
윤영석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한 도시의 리더가 된다는 것
‘융합의 시대’를 진정으로 지향하려면
기고 [전체보기]
글로벌 마이스 도시 부산을 꿈꾸며 /오흥철
한국 해운, 재건을 넘어 부활로 /김형준
기명칼럼 [전체보기]
기본소득 포퓰리즘, 가짜와 짝퉁의 대결
수에즈 단상
기자수첩 [전체보기]
부산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도 경찰 출신…취지 역행 우려 /박호걸
체계적인 ‘동백전 행정’ 쫌! /김진룡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한국피리, 서양피리를 만나다
한국음악의 떼루아를 찾아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2+1 책임제’ 족쇄로 안 남으려면 /유정환
‘신산업 도시 부산’의 필요조건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미·EU 백신 갈등
두꺼비를 부탁해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우리에게 외교 전략이 있는가 /허만
불법 주·정차 단속 애환 /박정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음식은 움직이는 거 아닙니다
한국식 돈가스의 탄생
사설 [전체보기]
문 대통령 특별연설, 국가균형발전 의지 아쉽다
시 청년취업지원사업 실효성 높일 개선책 찾아야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최고의 기쁜 날
퇴폐미술의 낙인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시험대 오른 박형준표 협치
재보선 민심 받들겠다더니
정책 제언 [전체보기]
코로나19는 사람을 차별했다 /박민성
목전에 다가온 메가시티 실현 /강병중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오월의 노래
봄날의 상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어게인
그 날을 기다리며
특별기고 [전체보기]
공공콘텐츠 없인 북항 성공 없다 /서의택
민주화·민족자존에 바친 삶, 편히 쉬소서 /허운영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나비 그림의 명인, 남계우
김정희의 ‘세한도’ 열풍
  • 해양컨퍼런스
  • 생명의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18기 국제아카데미 모집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