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민심은 생각보다 엄혹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석 전 '대통령과의 대화-질문있습니다'에서 국민들의 한숨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정은 훨씬 고약스러웠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 하나는 잘 하겠지'라는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였고, 이런 상태로 5년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이 주를 이뤘다. '신음하는 경제', '파탄 일보직전인 민생'은 뒷전인 채 당리당략에 얽매여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야 정치권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과 국회는 이미 혐오의 대상이었다. 삼류, 사류정치에 조그만 희망이라도 품는 사람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이 통째로 위기상황이다. 쇠고기 파문, '촛불 정국'을 지나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고유가 고물가에 이어 미국발 금융쇼크까지 발생하면서 경제적 충격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MB노믹스'는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시장이 믿질 않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예기치 못한 대내외적 환경이 경제상황을 어렵게 했다는 점은 맞지만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사정을 더 악화시켰다는 게 중론이다. 실용으로 미화된 '전봇대 뽑기' 식의 무계획적·즉흥적 정책, 고성장주의, 친재벌 정책은 되레 부작용만 심화시킨 결과를 낳았다.
경제만 위기인 것도 아니다. 새 정부 들어 방향을 튼 대북정책으로 남북 간 경색국면은 물론 북핵 문제마저 진척이 없는 가운데 터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남북관계를 비롯해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역학관계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대북정보를 안으로 곱씹어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주변국들도 입 다물고 있는 알량한 정보를 과시라도 하듯 흘리는 아마추어적 행태를 보였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비전'이나 '그림'조차 없이 오락가락 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 '실패한 5년'이 될지도 모른다. 시장이 신뢰를 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현 정부의 총체적 난국을 풀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 비상한 상황인 만큼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 헌정사에 선례가 없긴 하지만 이 대통령의 결단만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여야 구분 없이 인재 풀을 총가동해 능력 있는 인물을 구할 일이다. 당장 어려우면 연말께나 내년 초를 목표로 차분하게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기에는 정치적 셈법을 떠나야 함은 물론이다. 친이-친박으로 갈라져 '무늬만 172석'인 한나라당이 극구 반대하겠지만 이미 한계를 드러낸 그들의 정치력으론 미래지향적인 새 동력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가적 위기 앞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한나라당도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인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국을 '불치병에 걸린 총체적 위기'로 규정, 내각 총사퇴와 거국내각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요구한 적이 있다.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 얘기긴 하지만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도 얼마 전 한 방송 대담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민주, 공화를 초월한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 인사를 기용할 경우 아마도 미국의 최고 인물이 될 것이며, 가장 똑똑한 인물이 기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리면 얻는다. 기득권과 아집을 버리면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잦은 인사실패와 코드인사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여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인재 등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CEO(최고경영자)로서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한 국가의 선장으로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미 저널리스트인 시드니 해리스가 한 말을 옮겨 본다. "승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전문가라고 생각할 때조차도 자신이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 패자는 자신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전문가로 여겨주기를 바란다."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