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집에선 부산 광안리 앞바다가 잘 보인다. 바다만이 아니다. 초겨울 진입 직전 만추의 정취를 잔뜩 품은 단풍도 즐길 수 있다. 오래된 아파트단지에서 사는 혜택 아닌 혜택이다. 그런데 올해 단풍은 예전만 못하다. 색깔이 칙칙하다. 비가 적게 왔던 탓이라 한다. 1년 전엔 안 그랬는데….
1년 전 곱디 고운 단풍을 떠올리다 문득 지난해 이맘때로 생각이 이어졌다. 세상이 바삐 돌아간 것일까. 벌써 아득하다.
지난해 11월 중 한반도는 '2007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당국자 간 후속 회담, 실무접촉 등으로 숨가빴다. 1992년 이후 15년 만에 가동된 남북총리회담(서울)을 비롯해 국방장관 회담(평양),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서울) 등…. 개성에서 농업협력 실무접촉을 가졌는가 하면 조선협력단지 건설을 위해 남측 실사단이 북한 남포와 안변 등 '후보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2박3일간의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보고하면서 "가져갔던 보따리가 작아서 짐을 다 싸기 어려울 만큼 성과가 좋았다"고 표현했을 정도니, 후속 회담 등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 실제 경협공동위 1차 회의에선 개성공단 활성화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지만 남북 양측이 동해안 북한 수역에서 어로·양식·수산물 가공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동해안 남북 공동어로 사업 등은 때깔이 곱지 않더라도 실속은 있다. 나름 성과라면 성과다. 남측에 비해 어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북측 수역에서 조업이 이뤄진다면 가뜩이나 어자원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업인들에겐 희소식. 게다가 우리 어업인들은 저임금을 기반으로 물량 공세에 나서는 중국과의 경쟁, 선원 확보난 등 만만치 않은 대내외적 여건들과 싸우고 있는 처지다.
또 한 가지. 북한 내 수산물 가공단지 조성 사업이다. 북한은 단체급식용 생선인 명태와 대구, 참가자미 등 뛰어난 품질의 원료에 손기술이 좋으면서도 저임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남측의 수산가공 기술 등 노하우와 자본이 결합하면 사업성은 충분하다. 북한에 수산물 가공단지 조성으로 연근해 어획물 생산자인 지역 수협도 덩달아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까지.
당시 해운·물류 분야 최대 경협사업 대상지로 함경북도 나진항 또한 주목을 받았다. 나진항은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위치해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화물을 유치할 요지다. 나진항은 극동 러시아 자루비노, 나홋카항과도 가까워 이들 항만과 함께 동북 3성 화물을 부산항으로 연계 운송할 중계항으로는 제격. 물류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중국 지린성 옌지~다롄항~부산항 수송로는 7일 이상 걸리지만 옌지~나진항~부산항은 3일이면 된다.
물론 남측이 혼자 나진에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별로 없다. 절반은 러시아에, 나머지는 중국에 개발·사용권이 넘겨져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 말 나진~하산 간 55㎞ 철도 개보수 사업의 착공에 들어가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길은 있다. 러시아나 중국의 나진항 개발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참여하면 된다. 문제는 남북경협의 멍석을 어떻게 깔아 놓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하루아침에 얼어붙었다. 남북한 간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가동됐던 막후 대화채널마저 끊긴, 사상 유례 없는 남북관계 침체기란 지적도 있다.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들에 대한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성적표'가 100점 만점에 고작 33점이었다.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이나 개성관광, 민간단체 교류까지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불과 1년 전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가 지금은 오히려 생뚱맞게 보일 정도다.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됐다. 새로운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 한다. 한반도 정세의 긴장완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도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게 불가피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남북경협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