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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이른 봄나들이 /정찬주

용산 철거민은 사회적 약자…진압 아닌 보호했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2-06 20:33:0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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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전날 내리는 비를 겨울비라고 불러야 할지 봄비라고 해야할지 난감하다. 우산을 펴지 않고 맞아도 차갑지 않은 것을 보면 봄비라고 느껴야 옳을 듯도 싶다. 마당가의 배롱나무 가지와 매화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꽃망울처럼 영롱하고 소담스럽다.

비 내리는 날 집을 나선 까닭은 봉갑사 주지 각안스님과의 약속 때문이다. 보름 전쯤 각안스님의 은사이자 전 조계종 종정 혜암스님의 속가 조카인 현각거사가 살고 있는 진주에 함께 가기로 했던 것이다. 내 산방에서 봉갑사 불교문화원까지는 승용차로 20여 분 걸리는 거리다. 지본한의원과 목인예당(木人藝堂)이 자리한 그곳으로 찾아가 각안스님의 승용차로 갈아탄다. 각안스님은 혜암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15년을 시봉한, 부처님과 아난존자를 연상케 하는 분이다.

차창에 달라붙는 빗방울을 무심코 바라보는 동안에 각안스님이 나에게 양해를 하나 구한다. 진주의 현각거사를 만나고 난 뒤 해인사 원당암까지 갔다가 돌아오자는 것이다. 원당암의 원당(願堂)을 새로 중창할 모양이다. 스님은 원당의 헌 목재를 봉갑사로 옮기어 사천왕을 모시는 천왕문으로 신축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원당암 원당이 봉갑사 천왕문으로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셈이다.

그런데 나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그것이 아니다. 스님은 곧 뜯겨질 원당에서 오후에 승속의 대중이 다 모인 가운데 염불을 한단다. 원당을 위로하고 그 공간에 상주했던 신중(神衆)과 유무정물들에게 원당의 해체를 알린다는 것이다. 수십 층의 건물을 단 몇 초 만에 폭파하고, 대대로 살던 집을 굴삭기로 무자비하게 허무는 저잣거리의 우리와 비교해 보니 그래도 불가(佛家)는 자비공동체라는 생각이 든다.

경상도로 넘어서니 비가 멈춘다. 언제 비가 왔느냐 싶다. 한참 물이 올라야 할 나무들마저 빈혈환자처럼 메말라 있다. 현각거사는 봉선당이라는 골동품 전시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일전에 만났을 때 나는 산방에서 쓸 만한 붓통을 한두 개 부탁했던 것이다. 거사가 옥을 깎아 만든 붓통 한 개와 백여 년 된 눈물단지 두 개를 준비해 두었다가 꺼낸다. 눈물처럼 작은 옹기라고 해서 눈물단지라고 불렀던 것 같다. 백여 년 전만 해도 시집가는 딸에게 하나씩 줬다는 눈물단지는 차를 넣으면 다호(茶壺)가 되고 붓을 넣으면 붓통이 된다.

현각거사는 혜암스님 기념관과 재가선방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하며 이미 터를 구입했다고 한다. 넓은 터를 다 둘러보지 못하고 그 언저리의 임시처소에서 차를 한 잔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쉽다. 목적지가 해인사로 바뀌는 바람에 발걸음이 바빠진 것이다. 각안스님은 오후 늦게라도 원당암에 도착하여 염불해야 한다며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원당은 혜암 큰스님께서 법문하셨던 곳이었고 만년위패를 모셨던 법당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산 사람뿐만 아니라 망자의 영가들도 참선하여 생사 해탈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가들이 임시로 마련한 영단(靈壇)으로 갔겠지만 그래도 아직 못간 영가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리를 못 찾아간 영가들을 위해서도 염불해야 합니다." 스님은 염불과 기도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겸손이라고 말한다. 모든 존재에게 불성이 있으니 원당에서 살았던 날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에게도 원당의 해체를 정식으로 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권을 주장하는 철거민과 경찰들의 강경 진압작전으로 빚어진 이른바 '용산참사'를 접한 까닭인지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든다. 사회적 약자의 생명이 보호되기보다는 진압작전의 대상이라니 어이없고 기가 막힌다. 헐리는 건물과 그 공간의 모든 미물들에게도 고맙고 미안해하는 것이 인간의 겸손일 텐데, 그러기는커녕 여러 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게 하고 말았으니 참담할 뿐이다.

스님은 원당암에 도착해 즉시 가사장삼을 수하고 원당으로 들어가고, 나는 생전에 혜암스님이 머무시던 미소굴로 오른다. 혜암스님의 한 말씀, '공부하다 죽어라'가 가슴을 친다. 스님이 당부했던 공부는 자애로운 인간으로 거듭 나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공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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